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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Aug 23. 2021

일상 속 평범한 기준, 비건

나의 첫 비거니즘에 대한 기억

사실 나는 처음 경험한 비거니즘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지 않다. 몇 년 전 잠시 지냈던 남인도의 작은 공동체는 공동 비건 식사가 필수였는데, 매번 당번이 바뀌는 탓에 요리 실력이 들쑥날쑥했다. 실력 없는 친구가 요리를 맡은 날에는 코코넛 오일만 왕창 때려 부은 음식이 나왔는데 향부터가 역했다. 또 어느 날은 콩죽, 콩볶음, 콩으로 만든 정체모를 반찬 등 콩 퍼레이드가 벌리기도 했다. 덕분에(?) 예상치 못하게 매우 영양 불균형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비거니즘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면 나는 항상 호소했다. ‘나는 비건 솔직히 못하겠어. 적당히 먹으면 되지 굳이 완전히 끊어낼 필요가 있어? 너희 스테이크처럼 큰 덩어리 말고 조금씩 잘게 먹으면 되잖아!’ 비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전에는 엄청난 헤비 육식주의자였다는 점도 이 반감에 한 몫했다. 비건이란 이름으로 우월성을 뽐내려고 하는 행위들이 긍정의 폭력처럼 보이기만 했다. 이게 비거니즘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무튼 부정적인 감정이 크게 남은 탓에 여전히 비건 식사는 가벼운 시도 조차 쉽사리 되지는 않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개인적으로 고기의 질감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햄은 싫어하는 그런 유형)


그래도 5년이 흐른 지금은 비건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가지는 회의감 내지 반감은 많이 줄어들었다. 오만함을 내세우기에는 꽤나 대중화된 이유도 있지만, 제로웨이스트와 마찬가지로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임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내 일상에도 비건은 슬며시 스며들어 있었다. 비건 샴푸바로 머리를 감고, 비건 로션을 바르고, 비건 옷(혹은 빈티지)을 입으며, 직접 식재료를 키운다. 굳이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도 지나치게 거부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나의 일상에서 세워두는 평범한 기준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비거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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