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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Oct 16. 2021

2월 | 처음 쓰는 이력서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사실은 두려웠다.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이  기분이었다. 내게 남은 것은  비어버린 사회 초년의 여백이었다. 이를 뭐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기업 공채를 준비해야 할까. 지난 경험과 관련된 곳으로 이직을 해야 할까. 그냥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봐야 할까.. 놓여있는 선택지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앞으로의 계획은 뭐예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러게요. 저도 궁금하네요 ㅎㅎ라며 피하듯 답했다. 불현듯  잠수를 타는 사람들의 심경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상대방에게 미안할 여유조차 없는 상태였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시기였다.  


서울에 올라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내가 그토록 눈물이 났던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전문 영역이 부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나를  “저는 ‘OOO’ 이에요.”라고 직함으로 소개해보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말했다. “애진이는 다재다능이야” “애진이 큰 장점은 따로 우리가 쉽게 단어로 정의된 기본 역량은 어느 정도 다 갖춰서 일단 뭐든 기본 이상은 결과물 내는 느낌 같은 게 드는 거 그게 큰 장점인 것 같아.” 그러나 나는 이미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잡기에 능한 덕에 다양한 아웃풋을 만들어냈다고 한들 잡기는 잡기에 불과했다. 이력서에 역량이 잡기라고 써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과거의 나에게 ‘다재다능’라는 단어가 분명 칭찬이었는데 지금의 내게는 가장 두려운 말이 되어버렸다. 나는 왜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을까? 스스로가 애매모호한 어중이떠중이 같았다.


그래서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취직을 해보기로 했다. 좀 더 내게 자극을 줄만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스스로의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산업과 어떤 조직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나의 가치와 역량을 키우고 싶었다. 특화된 전문성을 갖추고 싶었다. 그리고 남해를 벗어나, 청년 혹은 문화 활동을 벗어나, 농업과 농촌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분야에 뛰어들어 나를 완전히 리셋시키고 싶었다.




이력서를 적으면서..

한 달 내내 골머리 싸매며 간신히 작성한 이력서와 노션폴리오

촌에서는 촌의 룰을 따라야 했듯이 서울에 왔으면 서울의 룰을 따라야 한다. 지나치게 특이점이 많은 내 이력들을 끼워 맞출 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독특함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 이상한 경력들을 가지고 이력서를 작성하려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통용되지 못하는 것들을 이곳의 용어와 문법으로 변환하는 작업은 꽤나 지난한 일이었다. 팩트로 보았을 때 나는 그 어떤 직무에도 경력이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력서를 쓰는 일은 결국 험난한 구직 시장에서 나만의 셀링 포인트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나 자신도 잘 팔아야만 했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번듯한 문장을 넣기 위해 다들 왜 그토록 노력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수치화되지 못하는 내 경험들이 살짝 원망스러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내 지난 3년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바탕 삼아 잘 나아가야 한다. 규격이 싫어서 뛰쳐나왔는데 이제는 규격에 맞지 않아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오다니.. 생각해보면 이력서도 포트폴리오도 나는 다 처음이었다. 내 이상하고 신기하지만 소중한 커리어.. 마지막 20대의 끝자락에서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에 들어섰다.




이력서 작성 시 주의사항  

1. 성과는 숫자로 표현해라
2. 직무와 관련된 내용 위주로 구성해라
3. 단순 나열만 하지 말고 메시지를 구조화해라
4. 핵심 메시지 unique selling point를 정의하라.
5. 이력서는 나의 ‘업무 성과’를 자랑하는 문서다.
6. USP (소개:스킬 / 업무성과 / 전문성 강조:산업 영역)
7. CAR(Context/Challenge > Action > Res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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