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라우닝 May 06. 2024

면접이라도 보게 해 주세요

아이의 대학입학이 정시까지 가기 전 수시에서 확정되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합격이라는 두 글자는 비현실적이고 생소한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간절히 바라서 그랬을까? 잘 믿기질 않았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지만 얼떨떨한 느낌 속에서 아이와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지인 아이들의 정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는 조용히 지내며  이제 슬슬 취직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자 이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디에 지원을 해볼까?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을 옆에서 보니 녹록지 않았다. 편의점 알바도, 빵집 알바도 경력자 우선이었다. 사실은 몸으로 하는 일들도 하고 싶었지만 경력도 없었던 데다가 그런 일들은 나의 빵빵한 나이(과 겸손한 체력)로는  차례가 안 올 것이라고 예상해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사실 나의 목표 분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가 그동안 쭉 해왔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바로 교육, 입시분야였다. 중고등 대상학원에서 일하는 것!


아이가 고교 입시에서 원하던 외고에  가지 못 하고 일반고를 가게 되었을 때 마음이 참담했었다. 대학입시도 아닌데 무슨 유난이냐 하겠지만... 비슷한 조건과 성적을 가진  주변의 친구들이 대부분 합격했는데 아이만 안 되고 나자 나는 그저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아이 앞에서는 의연한 척하며  대입이 중요한 거지 고입은 아무 상관없다고 아이를 다독여주었지만 아이가 학교를 가고 나서는 거의 1주일을 집에서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며 혼자 괴로워했다.  학교와 전공어를 결정하는 것을 아이의 뜻대로 하게 한 점,  자소서 쓰는 것도 혼자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깊이 개입하지 않은 점 등이 생각나며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는 이번에는 절대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일반고에 다니지만 외고 다니는 애들에게  밀리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학교면 학교, 학원이면 학원, 대학교면 대학교 모든 기관에서 하는 입시설명회에 힘닿는 데까지 참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각 기관별 홈페이지를 살피며 일정을 확인하고 설명회가 있으면 신청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설명회에 다녀오면 그 내용을 정리하고 어떻게 아이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지 궁리해 보았다. 목표로 하는 대학의 입시요강이 홈페이지에 개시되면 다운로드하여서 샅샅이 살펴보았다. 학부모 모임의 기회가 생기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다른 엄마들과 안면을 트려고 노력했고 입시 관련 정보를 구할 수 있는 학부모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해서 리포터 활동도 해보았다.


이런 배경 그리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성공적이었던 아이의 입시결과까지-이런 이력을 쓴다면 입시학원에서 상담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학원에서 불러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구직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쓰려고 하니 막막했지만 머리를 쥐어짜 내가며 칸을 채워갔다. 다양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빈칸을 채워갈 그  한 방이 부족함을 절감하면서.  과거의 직장 생활 이력이 지금의 구직활동에 도움이 되는 경력일까 고민하면서.  


알바몬이며 잡코리아며 여기저기를 뒤져가며 수십 통의 이력서 메일을 보냈다. 영어학원에서 가장 일하고 싶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니 중고등대상학원이면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 영어학원, 종합단과학원,  논술학원, 수학학원, 국어학원까지.... 그 외의 프런트데스크 안내직, 작은 기업체의 사무직을 구하는 곳에도 지원서를 보냈다. 구인공고 특기사항에  나이제한을 보란 듯이 명시해 놓은 자리도 무턱대고 다 지원했다. 


그러나 풀타임은커녕 시간제 자리 지원에서도  회신 한 통 없었다.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아이가 대학을 잘 가면 그 엄마들이 학원에서 상담일을  한다더라 등의  카더라 통신을 들어서  막연히 합격을 기대하던 나에게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왜 면접조차 볼 수 없는 걸까? 처음에 회신이 오지 않을 때는 내가 내 과거 이력을 이것저것 너무 많이 써넣었나 싶어서 최소한으로 줄여서 다른 곳에 보내보기도 했다. 그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왜일까? 학원분야는 무경력자라서?  의대 합격시킨 엄마가 아니라서? 컴활 자격증이 없어서? 나이가 많아서? 역시 실제 입시를 치른 경험보다는 나이가 어린것이  최고인 걸까? 별별 생각을 하며 구직활동 포기에 이르렀을 때쯤이  아이의 대학 입학실 날이었다. 대학 입학식을 끝내고 아이와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는 전철역에서 모르는 번호로 남겨진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드디어 면접 보자는 전화가 온 것일까?

이전 01화 들어가는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