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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13. 2019

52. 회사를 때려치워도 야식은 계속된다.

<회사를 때려치워도 야식은 계속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많은 술안주가 있구나 놀랬다. 다 같이 둘러앉아 정신줄 놓고 마시는 술은 쓰지만 맛있었다. 점심이나 저녁으로 학식, 삼각김밥, 도시락, 밥버거를 주로 먹었다. 대학생 신입생 환영회라던가, 누구 선배 졸업식이라던가 큰 행사가 있는 날에는 삼겹살을 먹었다.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는 파스타, 고르곤졸라 피자 같은 음식을 주로 먹게 되었다. 4년간의 대학생활을 통해서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구나 배우게 됐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는 세상에 내가 못 먹어본 음식이 참 많구나 놀랬다. 게다가 음식들이 하나같이 다 비쌌다. 잦은 외부 회의로 인해 회의 참석자들과 함께 점심 또는 저녁을 먹곤 했다. 언제 한 번은 중국집을 갔다. 나는 '자장면, 짬뽕, 볶음밥을 하나씩을 시키고,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탕수육을 하나 주문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딱 대학생 같은 생각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1인 3만 5천 원짜리 코스요리를 먹어봤다. 코스요리는 각 개개인별로 앞접시를 주고, 메인디쉬를 테이블 가운데에 두어 개인적으로 덜어먹게 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코스요리를 먹어보니 참 설거지거리가 많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양이 적어서 눈치 보며 먹다 보니 간에 기별도 안 갔다. 나는 그렇게 중국집 코스요리를 시작으로 다양하고도 비싼 음식을 먹어볼 수 있었다. 호텔에서의 만찬,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회식 등등. 그러다 보니 혼자 착각에 빠졌다. 나는 이런 비싼 음식들을 자주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보인다. 내게는 앞으로 아주 아주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중국집에 코스요리, 호텔에서의 만찬,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회식은 없을 거다. 회사의 이름, 회사가 준 직급, 회사가 만들어준 관계에서 벗어나 '나'의 현실을 직시한다.


회사를 다니며 어느 순간 나는 '음식'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두 끼, 점심과 저녁밖에 못 먹으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 구내식당의 밥은 4천 원으로 저렴하지만 먹기 싫었다. 항상 회사 앞 식당으로 가서 배부르게 먹어야 포만감이 찾아왔다. 밥을 시켜도 여유롭게 시켰다. 먹고 부족하느니, 배 터지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쯔음 업무 스트레스로 '야식'에도 손을 대고 말았다. 매일 밤늦게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야식을 시켜먹었다. 족발, 피자, 치킨 등 다양했다. 야식을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왔다. 배부르지 않으면 잠을 못 잤다. 퇴사를 하고도 야식은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야식을 먹었다면, 지금은 세네 번 정도로 빈도가 늘었다. 게다가 지금은 조금 저렴한 짜파게티, 라면, 햄버거를 위주로 먹는다. '오늘 식사를 제대로 못했으니까 먹어도 돼', '오늘 고생했으니까 먹어도 돼'라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합리화하며 또 먹는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퇴사를 결정했던 이유 중 하나가 '야식'이었다. 온갖 스트레스를 먹는데 다 써버리니, 돈 버리고 건강까지 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퇴사를 하고 나서도 야식을 계속 먹고 있다. 왜 자꾸만 속이 허한걸까. 왜 자꾸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걸까. 정작 내게 부족한 건 음식이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존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안정적이라는 희망, 내가 계속 발전하고 나아가고 있다는 자신감. 이 모든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 온 허함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바라는 대로 퇴사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카페를 차리더라도 '만족감'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사람은 음식이나 소소한 일에 쉽게 행복해지다가도, 이내 스스로를 쉽게 행복하지 못하게 만든다. 원하는 대로 해도, 바라는 대로 해도 끊임없이 욕심을 낼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한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목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꿈에 스스로를 다그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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