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Mar 31. 2020

62. 일부러 식물을 죽였습니다.

<일부러 식물을 죽였습니다.>


나는 지금 카페로 가는 길이다. 가는 길목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면 벚꽃잎도 후둑 후둑 떨어졌는데, 참 장관이었다. 꽃이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존재인가 보다.

온 겨울 내내 벌거벗고 있던 나무에도 봉오리가 피어난다. 푸릇푸릇한 녹음이 눈이 부시다.

자연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카페에 도착했다. 오늘 카페를 온 이유는 '휴점 연장'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 작은 동네에 추가 확진자가 나오고, 단골손님들은 하나같이 카페 휴점을 연장해야 되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내 멋대로 열어보고 싶지만, 정작 중요한 건 카페에 방문해줄 '손님'인걸. 한숨을 머금고 휴점을 연장한다는 안내문을 문 앞에 붙여본다. 안내문만 붙이고 나가려다가 한편에 모아놓은 화분이 보인다. 카페를 처음 개업했을 때 선물로 받은 화분들이다. 나도 죽을상인데 화분들도 죽을상이다.

'나도 속상한데, 너희들까지 이렇게 비실비실하면 어떻게 하니?'

회사에 다녔을 때 나는 100%의 확률로 식물을 죽였다. 일명 '마이더스의 손(The Midas Touch)'이랄까?

옛날 나의 최애 도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마이더스의 손은 마이더스 왕이 신에게 '모든 것을 만지면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주었는데, 결과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딸 조차 황금으로 변해버린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참 애석하게도 나는 '황금'이 아닌 '죽음'을 선사한달까?

그런데 여기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기관장님이나 부서장님은 특별한 날이 되면 어디서 화분 하나를 꼭 선물로 받아왔다. 화분은 위풍당당하고 고급스러웠으며, 그 화분 속에는 항상 '난(蘭)'만 심어져 있었다.

부서장님은 그 화분을 내게 건네면서 "선물 받은 화분이니 잘 관리해줘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내 자리 옆에는 난이 하나, 둘 늘어 어느새 6개가 넘어갔다. 업무로도 바빠 죽겠는데 이놈의 난들도 정성스레 키워야 한다니 퍽 난감하다. 그렇게 내 관심 밖으로 사라진 난들은 매일 컴퓨터 바람만 숭숭 맞고 자랐다. 물은 어쩌다 내가 마시고 남은 물을 부어주었고, 안 줄 때가 태반이었다. 나는 내 옆자리에서 '물을 달라', '잎을 닦아달라', '제대로 좀 키워달라'라고 무언의 말을 뿜어내는 난들을 빤히 바라보다 결심했다. '얘들을 말라 죽이자.'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업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결국 난들은 모두 생을 마감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추가된 2개의 난을 포함해 총 8개가. 나는 난들의 생사를 확인한 다음날 '조화'를 사다 놓았고, 결론적으로 내가 퇴사할 때까지 그 누구도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퇴사 후 카페를 첫 오픈한 날, 직장동료와 친구들이 화분을 가져왔다. 스투키, 선인장, 돈나무 등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들어왔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파인애플 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이 엄지손가락만 한데, 생김새가 파인애플처럼 생겨서 참 앙증맞게 귀여웠다. 나는 회사에서와 달리 식물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내가 '직접'받은 선물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부탁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직접' 키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을 주면 쭉쭉 빨아들이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물을 참 맛있게 마시는 소리인 것 같아서 좋았다. 번식하려고 뿌리를 뻗어대는 식물을 볼 때면 '아, 이 맛에 식물을 키우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애정을 줘도 문제였다. 파인애플 선인장은 내 과한 애정(과한 물 주기)으로 2개월 만에 사망했다. 그나마 돈나무는 무려 1년 3개월 이상을 살았는데, 그마저도 이번 겨울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살아있는 식물은 스투키뿐이었는데, 몇몇은 죽어갈 때가 되었는지 줄기가 물렁물렁해졌다. 방금 전까지 벚꽃이며 푸른 녹음을 보고 왔는데, 카페에서는 식물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고 있으니 속이 쓰리다. 그러다 지난번 영양제를 꽂아놓고 간 난 하나가 보인다. 친척이 개업선물로 사주었던 난. 회사에서의 일화 때문에 못생겨 보이고 싫었던 난. 이름조차도 촌스럽게 들리는 난. 그 난에 꽃봉오리가 맺혔다. 무관심에서 피어난 그 작은 봉오리 하나가, 그 별거 아닌 꽃봉오리가 속상한 내게 조금의 위로를 보내주는 듯하다. 언젠가 나도 꽃을 활짝 피울 거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61.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카페 문을 열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