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그 이름, '신용카드'
직장인 시절, 월급날에 딱 맞춰놓은 신용카드 결제일은 '내가 고생한 한 달의 결실은 무엇인가'라고 회의감에 들게 했다. '카드사에서 실수로 뭔가 잘못 결제한 게 있을 거야'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카드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용내역을 전체 엑셀 파일로 받아서 꼼꼼히 확인하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카드사의 시스템은 빈틈 하나 없이 완벽했다. 단돈 1원이라도 틀리지 않았다. 난 진심으로 월급이 들어오면, 카드값으로 몽땅 빠져나가는 이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었다. 카드결제금액의 일부를 선결제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신용카드로 쓴 돈은 통장에 들어있는 돈보다 '항상' 많았다. 단 한 달이라도 신용카드 금액을 다 갚을 정도의 현금이 통장에 있질 않았다.
난 특수상황을 노리기로 했다. 명절휴가비를 받을 때라던가, 연말 상여금을 받을 때! 바로 그때에 '목돈'이 생기니까! 그 정도라면 신용카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였다. 소중했던 보너스는 부모님 용돈 조금, 그동안 엄청난 인내로 회사에서 살아남은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보상으로 순식간에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졌다. 마지막 방법이다. 카드를 일단 없애보자. 그래, 눈 앞에 있는 이 카드를 부숴버리자. 그러면 쓰고 싶어도 못쓰잖아? 그러나 '나'는 또 '나'였다. 나는 다음날 카드사에 전화해서 신용카드 재발급 신청을 했다. 아아, 결국 나는 신용카드의 늪을 기어코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애매한 카페'를 차렸고, 카페를 차리는 과정에도 신용카드는 어김없이 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도 여전히 '카드값> 현금' 수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애매한 카페&동네 사랑방의 단골손님이자 절친인 조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직딩 조양도 역시 신용카드의 심연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신용카드를 끊을 필요가 없다는 나름의 이유를 대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하, 유동자산이 없어. 적금을 깨야 신용카드 손절 가능."
"카드회사서 내 월급 다 훔쳐감. 허무함. 내년에는 신카를 잘라볼까?"
"근데 생각해보니 신용카드가 할인되는 경우도 있잖아? 이득인데?"
"근데 신용카드 안 쓰면 확실히 소비하는 금액이 줄까?"
"소비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할 것 같은데? 통장에 돈이 없어서"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나 조삼모사 아니야?ㅋㅋ"
"아냐, 신용카드 쓰는 게 이익일 수 있어. 신용카드 안 쓰면 신용등급 떨어진댔어"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득 조양이 이러는 거다.
"신카를 끊으면 진짜, 마음이 매일 아프겠는데.."
"뭐가 마음 아파?"
"체카 결제할 때마다 내 통장잔고를 봐야 한다는 거가 너무 슬프잖아. 맘이 아픈데."
나는 조양의 말에 한참 동안 웃었다. 진짜 그 이유라면 신용카드를 끊을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우리는 서로 '다이어트 좀 할 겸, 식비나 아끼자. 그게 카드값 줄이는 지름길일지도'라고 말하며,
서로의 카드값을 걱정해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신용카드의 늪을 벗어나긴 글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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