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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7. 2021

집에서의 흘러넘치는 시간들을 낭비하지 마세요.

오후 1시에 애매한 카페에 손님이 두 분 찾아올 예정이다. 카페에는 코끝을 간지럽히는 커피 향이 맴돌았고, 조금 쌀쌀한 날씨에 냉난방기도 달달달달 돌아가고 있다. 카페 구석구석 모난 곳은 없는지 쓸고 닦고 청소도 하고, 잔잔한 노래도 틀어본다. 오랜만에 공간을 휘감는 카페만의 생기가 진심으로 반갑다. 오늘의 손님들은 조금 특별하다. 최근 카페 겸 동네 사랑방으로 입소문이 난 '애매한 카페'를 인터뷰하러 온단다. 꺅!


손님이자 인터뷰어인 두 분은 인터뷰에 앞서 공간을 찬찬히 둘러본다.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간이네요" 나는 이 말이 언제 들어도 너무 좋다. 나 또한 '애매한 카페'를 너무 사랑한다. 애매한 카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카페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문화공간이라고만 말하기도 뭐한 그런 애매한 공간. 내 애매한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소이다. 애매한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주는 따스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일이 농익듯 더욱 깊어졌다. 이 공간을 지금껏 유지해준 손님들이 함께 만들어준 '애매한 카페'만의 고유한 분위기다. 


첫 질문은 이랬다. "왜 이런 공간을 차리게 되셨어요?" 그냥 심플하게 '퇴사 후 로망'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멋없어 보였다. 우물쭈물하다가 나름 생각해두었던 '듣기 좋은 이유'를 거창하게 말했다. "다른 카페와의 차이점은 뭐가 있을까요?" 뭐가 있나. 오히려 다른 카페들과 비슷하지. 아니, 오히려 애매할 뿐인데. 그래도 나름 나름의 이유를 고만고만하게 말했다. 질문과 나의 허황된 답변이 수없이 오갔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인터뷰어가 물었다. "요즘 여기 주변에 참 즐길거리가 없죠? 포스트코로나시대에 어떤 문화모임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요즘 사람들에게 부족한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뭐랄까, 앞선 질문들에서 듣기 좋은 모양새를 꾸며냈다면 이번에는 내 마음에서 진심이 툭하고 터져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에게는 어떤 문화활동이 필요한 거 같은가요?'라고 물어봐도 딱히 대답할 게 없어요. 요즘은 모든 것을 네모난 휴대폰 하나로 시간을 떼울 수 있어요. 집콕, 방콕 하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조금 들여다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있어요. 그래도 심심하면 넷플릭스보다 보면 하루는 순삭이죠. 


그런데 무언가 공허하다고 느끼진 않으신가요? 전 그랬어요. 퇴근 후 남는 시간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나면 스르륵 잠이 드는 일상. 그게 반복되는 한 달. 그게 유지되는 일 년은 너무 허무해요. 그러고 나서는 점차 스스로를 비난해요. '너는 왜 시간을 그렇게밖에 못쓰니!' 그런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자책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그런 것뿐이에요. 우리는 갑자기 코로나로 인해 주어진 엄청난 시간을 보며 허둥지둥하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던 것뿐이에요. 우리는 항상 밖에서 타인들과 어울리며 보낸 시간이 더 길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가져본 적도, 온전히 써본 적도 드물죠.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집에서의 시간을 오롯이 써보는 연습이 필요해요. 뭔가를 거창하게 꾸며내고 허황되게 말하고 계획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밖에서 무얼 계속하려고 하기보다, 자기 안에서의 시간을 다스려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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