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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8. 2021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해도 괜찮아요.

카페와 동네 사랑방을 운영하며 수많은 손님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중 무지를 드러내는걸 공포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카페의 메뉴가 온통 영어로 쓰여있어 '제일 맛있는걸'달라고 했다가 커피의 쓴맛에 '헉' 깊은 단말마를 삼킨 손님들도 있었고, 모임 중에 나온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선 횡설수설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런 손님들을 볼 때마다 '묻는걸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 우리 지역에 아웃백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겼을 때를 기억한다. 내게 고기라고는 상추에 쌈장 묻혀 먹는 삼겹살이 최고이자 전부였는데, 사람들이 '스테이크'가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라든가, '스테이크'를 먹어봐야 진정한 고기를 먹어본 것이다라느니 하는 말을 했었다. 그러면서 내게 묻는 것이다. '넌 레어가 좋아? 미디움? 웰던?' 그때의 당혹감이란. 고기가 알아서 구워져 나오는 게 아니야? 그렇게 나는 '스테이크'라는 낯선 음식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보다는, '공포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아웃백은 나한테 그렇게 영영 멀어지나 했는데, 대학생 때 썸남이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아웃백을 공부했다. 포크는 어떻게 집어야 하는지, 나이프는 어떻게 놔두어야 하는지, 고기는 어느 정도 구워달라고 해야 할지. 철저한 공부 끝에 아웃백 매장에 들어가 실전에 돌입했지만, 난 또 난관에 부딪혔다. 스테이크랑 곁들여 먹을 '사이드'를 결정하란다. 사이드는 또 뭐야? 반찬 같은 거야? 다행히 앞에 썸남이 감자니 뭐니 말하자 "똑같은 걸로 주세요"라고 말할 뿐이다. 그렇게 먹은 첫 스테이크는 내게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손에 땀만 가득 흐르게 했을 뿐. 

처음 부산에 백화점에 갔을 때도 기억난다. 그때는 온 가족이 함께였다. 나는 들어가기 전부터 백화점의 규모에 압도당했다. 들어서서는 웅장한 인테리어와 화려함에 압살 당했다.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수치스러워졌다. 사람들은 백화점 안에서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는데, 나 혼자만 톡 튀는 것 같았다. 내가 촌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안 놀란 척, 감탄하지 않은 척, 태연한 척, 자연스러운 척 새침하게 굴었다. 옆에서 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아빠와 엄마를 보자 부끄러웠다. 옷을 사준다는 부모님을 따라 이곳저곳 따라다녔을 때, 옷에 붙은 가격표를 보고 '이 곳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곳이구나'라고 느꼈다.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만 올 수 있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잡아끌고 식품관으로 가서 만두를 사주었는데, 당당하게 물건을 요구하고 계산하는 엄마를 보니 갑자기 너무 멋져 보였다. 그리고 엄마는 점원에게 다른 종류의 만두는 없는지, 물은 어디서 떠오는지를 물었다. 점원은 무척이나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뭐랄까.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순간 내 안의 뭐가 파사삭하고 깨진 기분이 들었다. 알을 깨고 나간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사실을 깨친듯한 번쩍임을 느꼈다. 아주 간단한 사실이다.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된다.' 왜 나는 이걸 몰랐을까? 모르는 걸 왜 부끄러워했을까? 새로운 것을 보고 감탄하는걸 왜 수치스러워했을까? 내가 접해보지 않은 음식, 물건, 장소에 대해서 감탄하고 새로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그 음식을 만든 요리사, 장인, 건축가에게는 기쁜 일이 아닐까. 감탄은 무지의 증거가 아니다. 무지는 멍청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저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경험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 후로 나는 묻는 것에 대한 공포가 없어졌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질문의 요점을 이해를 못했을 때도 주저 없이 묻는다. 새로운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감탄하고, 좋으면 물개 박수를 친다. 좋다는 감정을 서스름없이 표현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이 신기해하며 다가간다. 그러니, 내가 가졌던 공포감을 경험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오늘의 인사말을 전하고 싶다. 

"편하게 물어보세요, 저는  친절한 사장님입니다"

https://brunch.co.kr/@aemae-human/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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