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오늘은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소개해드릴게요.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저자이자 학자였죠? 에리히 프롬은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데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사회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연 인물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이 소외당하는 이유를 파헤치고, 인간 내면의 진정한 해방과 사회 변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인본주의적 공동체를 꿈꾼 인물이죠. 자유 대신 복종을 선택하며 나치를 탄생시킨 독일인의 심리를 분석하고, 베트남 전쟁과 핵무기 확산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에 앞장섰으며, 소비주의에 빠진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등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실천적 학자이기도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삶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우리가 삶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라고요. 언뜻 생각하면 쉬운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삶은 죽음의 반대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에리히 프롬이 생각하는 삶이란 이렇습니다. “삶이란 항상 하나가 되고 완전해지려는 성향이 있다. 달리 표현하면 삶이란 어쩔 수 없이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다. 성장과 변화가 멈추면 죽음이 닥친다. 삶은 항상 과정이다. 변화와 발전의 과정이며, 기존 구조와 태어난 환경이 주고받는 끝없는 상호작용 과정이기도 하다.” 즉 삶이란 끊임없는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성장과 변화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요. 그리고 연령에 상관없이 우리는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조금 더 정신적으로 무르익는 과일이 되기 위해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짧게나마 ‘삶’의 의미를 고민해봤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해볼 시간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폭력을 사랑하는 사람은 폭력의 수단인 재산, 지위, 명성, 탱크와 폭탄의 크기를 자신의 인성의 크기로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기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신, 사랑, 생명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수단의 힘을 키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투자한다. 그러면 폭력 수단의 잠재력은 커질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더욱 약해진다.” 진정한 자신의 정신, 사랑, 생명력을 키우는 대신 수단을 키우기에 더 급급한 모습.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저 또한 부를 키울 수 없다면, 명예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이름 석자를 조금 더 알리기 위해, 혹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삶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 내 삶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빠져있었던 거죠.
저는 이 책을 가지고 진주 시민들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독서모임을 했었는데요. 참가자 분들께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삶을 권태롭고, 지루하고, 힘들고 고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 듣고 굉장히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물어보았죠. "그럼 그렇게 지친 마음을 어떻게 달래십니까?"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여행, 맛집 탐방, 카페 투어나 귀여운 물건을 사거나 하는 것들을 통해서 힐링한다고요. 지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정말 제한적이고 한정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찰나의 마음의 '힐링'을 위해 또 '수단'에 의존하게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또 상처받고, 또 찰나의 위로를 받고, 또 상처를 받는 그 무한루프. 도대체 어떻게 해야 깰 수 있는 걸까요.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공허함을 느끼고 이 허전함을 상징적으로 채우기 위해 다른 사물, 바깥에서 들어오는 사물로 자신을 채워 마음의 공허와 쇠약을 극복하려 한다." 즉 현대인은 '소비'하는 사람으로서밖에 살지 못한다는 건데, 들으니 그것이 참 자신의 삶을 채우지 못하고 사는 삶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에서 현대인의 공허함과 소비를 이야기한 구절도 한 번 읽어드릴게요.
"소비 자세의 실체가 무엇인가? 인간은 무의식적으로는 수동적이고 마음이 허전한 데다 불안에 떨고 고립된 인간이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소외감과 권태에 시달린다. 오늘날 술과 여행, 책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하지 않느냐고, 따분하냐고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아니요. 정말 행복해요. 우리는 나날이 더 많이 여행하고 술 마시고 밥 먹고 물건을 사기 때문에 따분할 틈이 없어요.” 이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하고 따분하고 소외감에 시달리는 인간은 강박적 소비로 불안을 보상한다. 인간은 공허함을 느끼고 이 허전함을 상징적으로 채우기 위해 다른 사물, 바깥에서 들어오는 사물로 자신을 채워 마음의 공허와 쇠약을 극복하려 한다."
여러분의 소비패턴은 어떠신가요?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외롭고 또 삶이 고돼서 소비로서 채우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진 않나요. 이런 현대인을 두고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을 주고 필요가 없는 것은 애당초 즐길 수 없다고 믿는다. 그냥 앉아 있거나 걷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는 삶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없다면 기쁨도 없기 때문이다. 기쁨의 개념이 사라져 가는 중이다.” 돈을 주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밖에 잔잔히 앉아 흩날리는 바람을 맞고 있는다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날의 오전과 오후를 즐긴다던가, 이런 것들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구나 참 반성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계속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는데, 이 또한 삶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좋은 출발이라고 봅니다. 이 책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 순간도 삶에 대한 사랑을 향해 이미 첫걸음을 뗀 셈인 거죠. 망상을 버리고 타인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 계속 밖으로만 나다니지 말고 자신에게 가는 길을 배울 수 있는 사람, 생명과 사물의 차이를, 행복과 흥분의 차이를, 수단과 목적의 차이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폭력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삶에 대한 사랑을 향해 이미 첫걸음을 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