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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Oct 29. 2022

8. 갱상도 사투리의 마음 깊이

<애린왕자>

날도 추워지고 코로나로 집콕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꽤 많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정말 유쾌한! 책을 들고 왔답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이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책. 바로, ‘어린 왕자’죠. 그런데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어린 왕자’가 아닌 ‘애린 왕자’랍니다.      


‘어린 왕자’가 아니라, ‘애린 왕자’라니, 무슨 뜻일까요? ‘애리다’는 ‘어린’ ‘여린’의 경상도 사투리 말이죠? 그래서 이 ‘애린 왕자’라는 요 책은 ‘어린 왕자’를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한 아주아주 재미있는 책입니다. 경상도 사투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데요. 정감 넘치는 구수한 사투리를 통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되었을까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1943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저작권은 저작자의 사후 70년 이후 만료되기 때문에, 이 ‘어린 왕자’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각색하거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어린 왕자’를 출판하는 독일의 틴텐파스 출판사와 한국의 1인 독립출판사인 이팝이 함께, 생택쥐페리의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어린 왕자’를 갱상도 사투리로 각색해서 출판하게 된 거죠!         


이런 계기로 포항에서 온 최현애 씨가 '어린 왕자'를 갱상도 사투리로 번역했는데요. 왜 ‘애린 왕자’를 번역하게 됐는고 하니, 서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린 왕자는 골목 띠 댕기면서 흙 같이 파묵던 시절이 그리버가, 같이 놀던 얼라들 기억할라꼬 내가 다시 써봤다. 두둥실 정겨븐 이 말, 이 사투리, 이기, 바로 내 친구들 그 자체다. 세월에 자꾸 열버지는 내 동심은 쪼매 달랐던 기지. 이기 서울말 아니라고 틀린거는 아니자나. 그때 마카다 순진하이 같이 논다고 욕 본 얼라들 하고, 인자 지 얼라들 키운다고 욕보는 내 귀여븐 친구들한테 이 책을 줄라고. - 최현애가-’ 음. 뭔가 아쉬운걸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독서모임을 해서 가장 사투리를 구수하게 읽은 한 멤버가 직접 낭독해주는 파일을 들어보세요!


갱상도 사투리로 들으니 아주 구수하죠? 그럼 이어서 우리도 애린왕자로 동심의 세계로 빠져볼게요. 어린 왕자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인 ‘나’는 6년 전 사막에 비행기를 불시착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어린 왕자를 만납니다. 어린 왕자는 ‘나’를 보고 양을 그려 달라고 하죠. ‘나’는 이런저런 양을 그려주지만, 어린 왕자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상자를 하나 그려주죠. ‘네가 원하는 양이 그 상자 안에 있다고’하면서요. 애린 왕자 버전으로 함께 읽어보실까요?


“저기...양 한 마리만 기레도.”

“뭐라카노”

“양 한 마리만 기레달라켔는데.”

그래가 나는 양을 요래 기리따. 얼라가 한참을 살펴보디 이카는 기라. 

“아니! 이기는 하마! 비실대모 병들았네. 따른걸로 하나 기레도!”

나는 다른 그림을 기맀지

“참말로...이게 아니라 카이... 이기 숫양인데 뿔이 있어가..”

그래가 나는 다른걸 기맀지

“요고는 너무 늙았자나! 나는 오래 살 양이 필요하데이!”

나는 그림 던져주고 이랬제

“요게 상자데이. 니가 갖고 싶어하는 양은 고 안에 들어있는기라.”

그란데 놀랍게도 얼라 감독관 얼굴이 밝아지더라고.

“내가 원하는 기 바로 이기다!!”     


한 장면 더 들여다볼까요? 어린 왕자가 사는 별에는 장미꽃이 있었습니다. 그 꽃은 자기의 가시로 호랑이 발톱도 이긴다고 허세를 부리고, 물주라, 바람 부니까 유리뚜껑을 씌어달라 아주 까탈스럽게 굴었는데요. 어느 날 어린 왕자가 작은 별을 떠나 여행을 한다고 하니 꽃이 자기가 우는 모습은 또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애린 왕자’ 버전으로 읽어볼게요


-“잘 있그레이” 꽃자테 말했다. 근데 꽃은 입을 안띠더라.

-“잘 있끄래이.” 다시 말했능데, 결국에 꽃이 입을 띤다.

-“용서하이소. 그라고 행복하이소.” 꽃이 이바구했다.

-“당연히 니를 사랑하지예. 당신이 그걸 몰랐지예. 내 잘못이지예. 뭐 지금 와가 뭔 상관이 있겠능교. 당신도 내 만큼 바보자나예. 행복하세예. 유리 덮개는 마 인자 치아뿌이소. 필요없아예...”

-“그래도 바람불라...”

-“지는 그래 감기 잘 안걸려예. 시원한 밤바람이 내한텐 더 좋을거라예. 난 한 송이 꽃이자나예.”

-“그래도 짐승들이 달레들모...”

-“나비 볼라모, 벌그지 두 세 마리는 참아야 겠지예. 나비는 참 아름답제, 야들 아이모 누가 나를 찾아 오겠노, 당신은 멀리 가뿌고. 등치 산만한 짐승들이 온다케도 나는 겁 안나예. 내자테 발톱 있으니께...”

-그라믄스 가는 순진하이 가시 네 개를 비주는 기라. 그라고 이케 덧붙있따. “그래 꼬물딱대지 마이소. 신경 쓰이그로. 떠나기로 했으모 얼릉 가이소”

-꽃은 우는 모습을 안비줄라 케따카네. 참 이마이 오만한 꽃잉기라.     


사투리로 이야기를 들으니, 장미꽃의 슬픈 마음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지 않나요? 흑흑. 사투리가 전해주는 감정의 깊이와 풍부함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직접 들어보면 느껴지죠? 이 책은 최근 전라도 버전도 나왔다고 하니, 궁금하신 분이 계시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랄게요. 마무리하기 전, 오늘 사실 제가 퀴즈를 준비했어요. 저는 책을 읽으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투리가 있었어요. 결국 책방지기는 네이버 초록 창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바로, ‘이바구’입니다. ‘이바구’가 무슨 말의 갱상도 사투리일까요? 답을 맞춰주시는분께 엽서 5종셋트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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