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문학이 무어냐고 물어오면 할 말을 잃는다. 우스갯말로 '문학? 그거 먹는 거지요?'라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어쩌다 글을 알게 되었고 글을 배우러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도 문학이란 거창한 이름은 나 같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어느 시모임에 처음 갔을 때,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계획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나는 내가 보아온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가 된통 비난을 받은 후부터, 나 같은 주제에 감히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돈 많고, 많이 배우고, 시간이 많아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니면서 풍경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만 문학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 앞에 내가 살아온 피멍 든 이야기 한 권을 남기는 게 소망이었다. 마음과 달리 쓴 터무니 없는 한 통의 편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 일로 인해 어린 동생과 가족들을 가난과 고통의 암흑으로 빠뜨리게 해버린 데 대한 죄책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해서 청소년기에는 숱하게 방황할 수밖에 없었고 우울할 수밖에 없어서 터무니없는 삶을 살아야 했노라는 변명도 끼워 넣고 싶었다.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고 시집을 출판한 후에도 내가 가진 문학에 관한 생각은 별 변함이 없었다. 예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는 출세와 명성을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부끄러운 삶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어떤 한 사람에게라도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고 낮은 자의 곡비가 되고 싶었다.
글이 인생의 전부인 양 시부모님 장례식에서도 시제를 찾아 헤매고, 없는 시간을 쪼개 박물관에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글감을 찾아 이곳저곳에 부끄러운 이름을 등록하기에도 모자라 남의 삶을 내 삶인 양 착각해 가며 아픈 흉내를 내기도 했다.
문학이 무슨 대단하고 거창한 것인 줄 착각하면서 불후의 명작이라도 남긴 사람처럼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목이 빳빳한 문학인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을 즈음, 책 한 권을 만났다. 누구보다도 문학인의 삶을 살아온 그 분의 책을 통해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문학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록이며, 결코 부자들과 지식인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고, 문학적 품격이 어떤 글이어야 하는지를 깊이 반성하게 했다.
본문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밑줄을 그었다. 문학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에 등이 꼿꼿해져 왔다. 숙제를 미뤄놓고 딴짓하다가 들켜버린 아이처럼, 시를 놓고 비틀거리던 나를 잠깐이나마 바로 세워볼 수 있었다.
글이 밥이 되지 못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어쩌다 보니 글은 내 양식이 돼 버렸다. 분주한 일상을 핑계로 이 양식으로 밥을 짓지도 못하면서 옆집의 밥 익어가는 냄새를 동경하기만 하는 한심한 사람이 되어 가면서도, 가끔 이분의 존함만 생각해도 자세가 곧아지는 건 아직도 내게 남겨진 숙제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