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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Sep 09. 2021

몸 사색

이틀 사이에 한의원과 내과를 돌며 신체를 다시 보다.


오늘 거울을 보니 오른쪽 날개죽지에 밥공기 크기의 푸르고 검고 붉은색의 진한 원이 생겼는데, 잉크가 과도해서 마르지 않은 인쇄물같다. 부황자국이다. 어깨가 몇 달이 지나도록 아파서 그저께에 근처 유명한 한의원에 갔었다. 

한의사는 피를 쭉쭉 뽑는 부황뿐만이 아니라, 간호사에게 총(다발적 피뽑는 기계)을 달라고, 망치를 달라고, 5호침과 4호침, 더 긴침을 달라고 하며 나의 몸이 놓인 치료침상을 빙빙 돌며, 조각가처럼 나를 교정해나갔다. 좀 나아지긴 했으나 그러고도 어깨가 열중쉬엇 자세가 되지 않고 무겁고 욱씬거려 오른쪽 귀 아래까지 통증이 번져오는 탓에 오늘도 한의원부터 들렀다. 

오늘은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 손목과 팔을 따라 침을 놓았다. 한의사는 왼쪽 손과 발가락에 침을 놓고서, 내 오른쪽 팔을 돌려 부드득부드득 소리가 나도록 어깨를 움직였다. 팔을 앞뒤로 크게 움직이는 운동을 서너 번 연거푸 하는 것으로 치료는 끝이 났다. 며칠만에 조금의 차도가 생기고, 한의사님의 움직임이 고수처럼 멋지기도 하고 , 그저께 한의원에서 가져온 신문에 훌륭하게 소개되기도 해서 (기사글에서는 그 분의 훌륭함이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다만 실린 사진 중 ‘훌륭한 납세자 상패’를 들고 찍은 컷이 것이 내 마음 한 켠에 신뢰감을 쌓은듯) 한동안 치료를 받아볼 생각이다.  한의원 옆에 주차한 차에 오르니 참을 수 없이 피곤해져, 근처에서 차를 마시며 볼일을 좀 더 보고자 했던 것을 취소하고 집에 와 짧은 낮잠을 잤다.  


그렇게 오전을 다 보낸 후, 

오후 한 시경 개금에 있는 병원에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벨을 잘못 눌러 내려야할 정거장 이전에 내려버렸다. ‘잘못 눌렀습니다.’ 하고서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도무지 그런 말을 못하는 사람이 나다. ‘이런 말을 했어야 했어.’ 라면서 집에 와서 이불킥을 돌리는 사람들이 아마 제법 있겠지만 이 나이에도 이런 소심함은 스스로도 버겁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쳐야겠다는 애씀은 없다. 개금역에서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데, 왼발이 ‘쿵’ 소리가 나고 오른발은 ‘짝’소리가 났다. 그게 서로 번갈아 ‘쿵짝쿵짝’ 발소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른발과 왼발이 다른 소리를 내다니, 내 발디딤에 문제가 있나, 골반이 틀어지거나 디디는 힘이 다르단 말인가. 궁금함이 들어 이번엔 왼발이 디딜 때 의식적으로 ‘쿵’을 먼저 넣고, 오른 발이 디딜 때 ‘짝’을 넣어 본다. 비슷하다. 그래도 그게 완벽히 같지는 않기도 하고 낯설어서 그냥 왼발이 쿵 소리를 내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1980년대엔 다들 왼발, 왼발, 하면서 구호를 외치며 운동장에서 ‘쿵’을 연습하고 각인했다. 왼발, 쿵, 왼발 쿵. 그렇게 구보를 익혔다. 아, 그래서 내 신체의 좌우가 서열이 생기고, 왼다리는 튼튼한데 오른다리는 허약하게 된 것인가? 나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왼발에 관심을 주고 주권을 주어서 오른 다리가 고장났을지도 모른다. 꽤나 설득력이 있다. 신체를 길들이기 위해 그 시절에는 운동장에서 픽픽 쓰러져도 뙤약볕에 조회란 걸 했다. ‘앉아, 일어서, 나란히’ 따위를 했으니 그게 내 몸에 이 나이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그래서 오른다리와 왼다리가 평등을 잃고, 오른 팔과 왼팔이 뒤틀어진 것이다. 이게 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흔적이라고 비약적으로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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