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무가 굳어지기 전에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 평생 인형의 입만 깎아낸 이들이 있습니다. 혹여 말실수라도 할까 두려워서, 혹은 내 감정이 남에게 짐이 될까 염려한 탓이겠지요. 젊은 날에는 그런 모습이 신중하고 사려 깊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월은 때로 그 부단한 노력을 배신하기도 합니다.
수십 년 동안 다듬어진 목각인형의 입은 끝내 희미해집니다. 지나치게 매끈해진 얼굴에는 표정이 남아 있지 않고, 어디에도 손을 걸 곳이 없습니다. 노년의 침묵이 더 이상 배려가 아니라, 타인과의 거리를 고정해 버린 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기어이 자기 말을 모두 쏟아내고야 마는 이들도 있습니다. 젊은 날부터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상대의 살결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일이 더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깎아온 목각인형의 몸에는 옹이가 많고, 만지면 걸리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그것이 당당함이나 예리함으로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굳어진 그 형상은, 때로 곁에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는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왜 외로운지 알지 못한 채, 허공에 날 선 말의 잔가루를 흩뿌리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무겁게 남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노년의 얼굴이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낯선 손님이 아니라, 내가 평생 반복해 온 습관들이 차지한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나이 드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그래서 조금은 슬픈 변명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늘 조심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그 조심이 한쪽으로만 기울어 내면의 나무를 왜곡되게 굳히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경계해야 할 것은 늙음 그 자체가 아니라, 굳어버린 나의 형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노년의 목각인형은 어떤 모습일까요. 억지로 지워낸 입처럼 지나치게 매끈하지도, 제멋대로 튀어나온 옹이로 가득하지도 않은 모습이겠지요. 나무의 결을 거스르지 않되, 모난 부분은 부드럽게 다듬어진 곡선. 할 말을 하되 그것이 가슴을 찌르는 가시가 아니라, 손에 쥐면 온기가 전해지는 둥근 말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저는 제 안의 나무를 어떻게 깎고 있는지 자주 돌아보려 노력합니다. 나의 조심성이 침묵이라는 벽을 쌓고 있는지, 아니면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있는지 말입니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수분이 빠지고 단단해질 뿐, 결국은 깎아놓은 모양 그대로 굳어질 테니까요.
먼 훗날 자연스럽게 드러날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존재이기를 바랍니다. 나무가 아직 무를 때, 조금 더 따뜻하고 보드랍게 나를 다듬어야겠습니다. 불쑥 튀어나온 거친 언어가 나로 완전히 굳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