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 수집
오래된 우표 앨범을 펼치며-이종희
지난가을, 친구가 건넨 사각 우표집 봉투를 펼치는 순간,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기억이 먼지와 함께 피어올랐다.
돌이켜보면 나의 우표 수집은 개수를 늘리는 소유욕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종이에 인쇄된 88 올림픽의 호돌이나, 가본 적 없는 마을의 낯선 새를 오래 들여다보며 작은 창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는 즐거움이었다. 학교에서 구입한 크리스마스실을 침 묻혀 붙이며, 얇은 종이 한 장의 온기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진짜 설렘은 우표 그 자체보다 편지가 도착하는 과정에 있었다. 답장이 든 봉투 귀퉁이를 오려 물 위에 조심스레 띄우던 순간을 기억한다. 종이가 물을 머금고, 접착제가 아지랑이처럼 풀리면 젓가락으로 우표를 건져내 말리던 그 과정은 나만의 엄숙한 의식이었다. 답장 하나를 기다리며 대문 앞을 서성이고 하루를 온통 쏟던, 느리지만 설레던 시간이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 낭만은 생활의 편리에 밀려나고, 기다림의 근육은 조금씩 퇴화해 버렸다.
이제는 기다림 대신 조급한 알림음이 그 자리를 채운다. 디지털 활자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봉투를 뜯을 때 느껴지던 종이의 저항감이나 잉크 냄새 같은 물성은 없다. 친구의 선물이 유난히 뭉클했던 건, 단순히 옛 추억 때문이 아니라 잊고 있던 그 무게감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닿으면 바스락거리던 그 촉감이, 전송 버튼 하나로 퉁쳐버린 나의 가벼운 안부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세상도 나도 많이 변했지만, 그때의 서정이 완전히 증발한 것은 아닐 테다.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 나는 숨 가쁜 디지털의 속도를 낮추고 답장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시계를 다시 내 책상 위에 올려두기로 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앨범을 펼친다. 손끝으로 오돌토돌한 우표의 톱니 자국을 천천히 쓸어본다.
손가락 끝에 닿는 까슬한 감촉 사이로 잊고 있던 얼굴들이 선명해진다. 나는 앨범 곁에 빈 편지지를 꺼내 놓고 뚜껑 닫힌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사각사각 펜촉이 종이에 닿는 소리와 함께 미뤄두었던 마음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