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슬픔에 대하여
밤새 적막이 써 내려간 기호를 읽는다
투명한 허공이
제 몸을 꺾어 만든 저 하얀 뼈마디들
부서지기 쉬운 절벽 위에
누군가 쏟고 간 고백이 엉겨 붙어 있다
기억은 늘 그런 식으로 도착한다
다 풍화되었다 믿었던 낡은 신음들이
계절의 모서리를 타고 돌아와
어느새 서늘한 무늬를 새겨 넣는다
손가락 끝으로 그 시린 파편을 만져본다
체온이 닿는 곳마다 차가운 문장들은
순한 눈물로 번져 흐르고
가려졌던 그늘이 조금씩 길을 낸다
보낸 마음은 어디에서 녹는 것일까
저 꽃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스며들지도 못한 채
오직 경계 위에 서서 제 몸을 반짝이는데
얼음이 다시 물이 되어 나를 씻어 내리는 시간
젖은 창 뒤에 고요히 멈춰 서면
비로소 너머의 볕이 굴절 없이 들어온다
지나간 슬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깊게 닦아내고 지나가는 윤슬
마음의 시린 정적은 뒷걸음질이 아니라
다시 맑아지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간
따스하고도 투명한 얼룩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