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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고향의 새랍문은 열렸을까

산문-6

by 이종희

지금도 고향의 새랍문은 열렸을까


먼지떨이 하얀 술을 양갈래 나누어 촘촘히 땋아 동그랗게 올려 묶었다. 이때 주황색 목단꽃 이불은 조금만 손보면 공주가 사는 성으로 둔갑한다. 백열등 아래에서 동생이랑 하는 인형놀이는, 흑백텔레비전에서 본 연속 인형극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그래도 끝은 항상 공주가 꿈나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언니야... 나... 배 아파..."


잠결인지 꿈결인지 동생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아랫마을에서 작은 아버지가 돌리는 디젤발전기는 멈추었다. 습관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었다. 딱딱한 물체가 손가락을 스쳤다. 힘이 덜 채워진 손가락으로 볼록한 버튼을 눌렀다. 어둠이 동그랗게 오려진 맞은편 벽 사이로 빛바랜 하늘색 비키니 옷장이 서있다. 겨우 몸을 뒤척여 방문을 밀었다. 삐그덕 소리가 밤공기를 잘게 가른다.


"아직도 안 자고 뭐 한다냐”


엄마의 부스스한 목소리가 불현듯 솟구친 두려움을 가라앉힌다.


"언니야, 아직 거기 있지 응..."

"그래, 나도 무서우니까 얼른 나와"


변소 안에서 동생의 불안이 나오면, 나는 변소 밖에서 꾹꾹 누른 겁을 들키곤 했다.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아버지는 변소에 있는 새총 같이 두 갈래로 나누어진 나무 기둥 발판을 걷어내고, 널따란 널빤지를 깔아 주셨다. 하지만 새랍* 가까이에 변소가 있어서 온몸의 촉수는 실바람에 부스럭거리는 비닐 소리만 들려도 소름이 돋았다. 새랍 밖 동백낭구*아래 키 큰 소나무에 도깨비가 놀다 간다는 이야기가 자동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아무리 싸우고 토라져도 금방 화해를 해야만 했다.


우리 새랍은 문이 없었다. 자다 보면 올빼미 소리가 방안으로 쿡쿡 파고들었다. 그래도 안으로 걸어놓은 문고리 사이로 숟가락만 끼워 놓으면 걱정이 없었다.


그해 봄날, 친구랑 놀다가 새랍에 들어섰는데, 마당 깊숙한 벽, 돌담과 낮은 돌담 사이에 보드라운 황토 흙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못 보던 앵두나무에 쌀밥 같은 봉오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우리가 놀러 간 사이 부모님이 화덕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화단을 만들어 두신 것이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환해졌다. 동생이랑 길에서 받아두었던 분꽃 꽃씨랑 봉숭아, 채송화 꽃씨를 뿌려두고, 한동안 마음에 꽃물을 들여놓았다.


한 무더기의 섬머시마들이 원형의 돌담 위에 있는 돌계단을 따라 멀어진 후로, 마을은 다시 잠잠해졌다. 그 아이들은 안도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낮은 묏동에 올라, 또 한 번 신내림을 하느라 혼을 빼놓았거나, 이야포로 직행하여 몽돌밭을 휘젓고 돌아다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며칠 밤낮으로 장대비가 쏟아진 후, 섬마을에 들이닥친 바람이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나를 새랍 안으로 떠밀고는 사라졌다. 참 이상했다. 바람은 왜 우리 새랍만 들어오면 맥을 못 추는지, 구멍 숭숭 뚫려 엉성한 돌담은 어떻게 바람에게 한 번도 넘어가지 않는지를...


그 찰나의 평안에 마음을 부려놓았을 때, 본동 남자 친구들이 급습한 것이다.


매끈하던 황토 마당 외피가 외마디 비명도 없이 뜯겨 나갔다. 아무도 저 자유의 몸부림을 막을 수 없다고 절망하고 있을 때,


"환장하겠네, 이 너므 시키들 여기서 뭐 한당가!"


새랍 쪽에서 앙칼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랍 밖으로 후다닥 뛰어나간 '이너므 시키'들이 내 친구네 마당에 들어섰는지, 뒷집에서 유리창 깨진 친구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섬머시마들이 여러 날 빗물에 질퍽해진 우리 집 마당 흙을, 친구네 은회색 시멘트 마당에 풀어놓은 것이다. 그 녀석들이 안도로 넘어가면서 조잘대는 소리가 희미해지고서야, 친구 엄마가 우리 집 마당이 훤히 보이는 윗길에 섰다. 어이가 없는지,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하셨다.


하필 부모님이 안 계실 때, 국어 선생님이 우리 담임 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오셨다. 나를 새랍 밖으로 부르신 국어 선생님은,


"학교 올 때 저거 잘라 와"

"네? 저걸 어떻게 잘라요?"

"아버지한테 부탁해 봐!"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오랫동안 빈손으로 등교했다. 하지만 국어 시간만 되면, 선생님이 아무 말씀을 안 하셔도, 가슴이 저절로 쿵쾅 거렸다. 결국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팔뚝만 한 담쟁이 몸통을 베어주셨다. 나는 왠지 모를 슬픈 한기를 느꼈는데, 국어 선생님은 몹시도 흡족해하시며 노트 두 권을 주셨다. 얼마 후에 선생님 사택 마당을 지나가다가 마사토에 반쯤 묻힌 우리 담쟁이를 보았다.


담쟁이는 새랍 오른쪽 돌담에서 아버지보다 더 오래 나이테를 늘렸다는 것쯤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겨우내 들키던 우람한 근육에 불그스름한 싹눈이 트기 시작하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이다. 봄비에 돌돌 말린 잎이 일제히 기지개를 켤 때면 나는 괜히 가슴이 떨려서 한입 깨물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다.


굵은 줄기가 사라진 자리는 유난히 허전해서 애써 외면해도 표가 났다. 잘린 자국을 볼 때마다 쓰리던 마음도 담쟁이 잎이 빈자리를 채울 때서야 조금 편안해졌다. 하지만 잎이 떨어지는 계절이 오자, 어떤 줄기도 그 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답답해도 새랍만 나가면 마음이 뻥 뚫렸다. 발아래 남새 밭으로 이어진 돌담에는 마삭줄이 넝쿨지고, 이따금씩 혜은이의 감수광을 크게 틀고 앞바다를 뱅글뱅글 도는 목선이 보일라치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 배는 지금 만선을 해서 깃발을 펄럭이고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태풍 경보가 발효되고 방파제를 박차고 오른 물기둥이 지난 물기둥보다 낮으면 안심했고, 연도 쪽 신강수도나 부도와 심장리 사이, 보돌바다에 거친 백파가 보이면, 일기예보를 알지 못해도, 내일은 등교 뱃길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황홀한 조망을 두고 멀리 떠나왔을 때, 부모님만큼 그리운 것은 우리 집 새랍이었다. 새랍을 떠날 때는 고향의 계절도 잃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드문 인적에 살찐 돌이끼와 우람한 초록이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다시 모천회귀를 꿈꾼다는 것을 몰랐다.


너무 오래 떠나와서 의식하지 못했던 것일까?

우리네 그리운 향수는 끊임없이 마음을 끌어당겨 고향의 새랍문을 열게 하지만, 한번 도시에 익숙해진 삶은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까닭에 고향의 새랍 문을 꼭꼭 닫아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새랍(대문의 금오열도방언)

*동백낭구(동백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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