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8
작년부터 내 머리에 돋기 시작한 새치가 제법 많은 숫자를 늘리고 있다. 보통 머리카락 보다 뻣뻣한 데다가 유난히 반짝여서 뽑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새치가 반복적으로 뽑힌 자리는 새로운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는다는 미용실 원장님 말씀을 듣고부터는 짧게 잘라 주고 있는데, 내가 어떤 일에 정신이 팔려 있기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하얀 낚시 줄로 변신한 새치는 책받침의 정전기에 휩쓸린 듯 빳빳하게 솟구쳐 있곤 했다. 새치 뽑힌 자리의 공백이 검증되었다고 해도, 사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릴 적부터 나는 유별나게 흰 머리카락 뽑기를 좋아해서 머리카락의 환경을 조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숲을 지나온 아침 해는 겨울이 깊을수록 창호지를 투과해 할머니 방안 가득 들어와 앉곤 했다. 그 빛이 절정일 때면, 할머니는 족집게를 내 손에 쥐어주며, 쪽진 머리에서 은비녀를 뽑으셨다. 그때부터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보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무한한 상상을 자극했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인지, 아니면 할머니께서 그날그날 즉석으로 지으신 소설인지는 몰라도, 수십 년이 지나도 지금도 어렴풋하게 저장된 장면이 있다. 머릿니가 어떤 사건을 겪은 후 단숨에 돼지만큼 커져서 바다 건너 이웃 섬마을 골목을 어슬렁거린다는 대목인데, 그때 나는 너무 놀라 흰 머리카락 뽑기를 멈추고는 한동안 멍해지기도 했다.
나에게 흰 머리카락 뽑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작은 손가락으로 검은 머리카락을 누르면, 흰 머리카락은 봄날의 잔디처럼 저절로 솟구쳤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족집게 입에 넣고 아가미를 살짝 눌렀다가 당기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뽑아도 흰 머리카락은 얼마큼 지나면 더 넓은 터를 장악했다. 내가 엄마를 따라 도시로 떠나게 되었을 때, 할머니의 서운함 속에는 이런 살가운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 할머니는 짧은 커트 머리로 변신해 계셨다. 어쩌다 할머니 댁에 방문한 날이면 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작은 무릎에 누우셨다. 아무리 호랑이 할머니라도 그때만큼은 순한 양이 되어 “아이고 시원한 거~”라고 하시며 매우 흡족해하셨다. 더 이상 할머니 흰 머리카락을 뽑아 드릴 수 없을 때, 나는 엄마의 흰 머리카락에 관심을 두었다. 할머니 흰 머리카락을 뽑으며 터득한 기술이라는 것을 모른 엄마는, 내 솜씨에 감탄하며 “이것은 야무지게 잘하네~”라고 칭찬을 하셨다. 그런데 이런 재미도 내가 고향을 떠나면서 끝이 났다. 내 뒤를 동생들이 이어가기는 했는데, 동생들은 한 가닥에 5원씩을 받고 뽑을 만큼 머리카락 뽑는 일에 흥미가 없었다.
이런 내 유별난 취미가 객지에서는 향수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고향에 도착하면 잊지 않고 엄마의 머리카락을 살폈다. 그런데 엄마도 흰 머리카락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할머니와 달리 염색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할머니와 엄마의 머리카락이 흰색으로 변하는 세월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여인들은 흰머리를 뽑을 수 있을 때가 그래도 좋은 시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전은 언제나 느닷없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매일 하얀 푸들을 데리고 산책하시는 우리나라 할머니를 베트남 호찌민시 반탄박에서 살 때 만나게 되었다. 먼발치에서 지켜볼 때는 할머니와 푸들은 한 세트로 보였다. 할머니도 푸들처럼 백발이었는데, 다정한 말씨를 건네며 푸들처럼 동그란 눈으로 웃어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백발로 나이 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바람도 결국 마침표가 찍히는 날이 오고 말았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아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처럼 너무 초췌해 보여서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여쭈었더니, 여전히 잘 지낸다는 것이다. 한참 대화가 오가고서야 때를 놓친 머리 염색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흰머리 때문에 염색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척 놀라는 기색이다. 며칠 전에는 “머리가 왜 이렇게 검어?” 하면서 일부러 내 머리카락을 들추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아직 나는 염색할 때가 오지 않는 게 분명한데,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부쩍 갈등한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이 하얘지는 이유는 멜라닌을 합성하는 멜라닌 세포의 수가 줄고 그 기능도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때문이든 새로운 지병 때문이든 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면 검은 머리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하는데, 세월에 겉모습이 아무리 바래저도 여전히 예쁘고 아름다운 분들을 만날 때가 많다.
길을 걷다가 풀꽃에게 눈길을 줄 때
손해를 보고도 빙긋 웃어줄 때
깜박깜박 잊어버린 순수를 느낄 때
그것들이 행여 돌아오지 않을 까봐 깊게 사유할 때
지나간 상처들을 애써 들추며 아파하지 않을 때
잘 있는지 궁금하다며 문득 문자를 해올 때
아픈 다리를 하고도 긴 줄을 묵묵히 기다려줄 때
고운 말씨로 아르바이트 학생의 수고를 위로할 때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애써 설명하려고 들지 않을 때
뒷전의 안락을 양보하고 궂은일에 앞장설 때
배움에 있어 항상 마음 길을 열어둘 때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베푸려고 할 때
이왕이면 예쁘게 살아야 한다며 주위를 가꿀 때
한 곳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빛깔을 존중할 때.....
이런저런 생각을 꺼내다 보니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을 나열하고 있다.
할머니와 엄마가 한없이 낡아가며 가벼워지는 순간에도 나에게만은 오롯한 사랑이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