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멈춘 자리 우린 자라서

詩의 뜰-19

by 이종희

네 멈춘 자리 우린 자라서

-이종희


반짝이는 연두는 보슬비에 안장될 거라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휘어진 구간을 지나야 만 초록으로 번질 수 있다고

숙명의 가지를 늘리며 묵묵히 걸어가는 길 위에서

햇살에 묻어온 초여름 냄새가 푸른 제복을 적실 때,

군용 트럭 아래로 쏟아진 너를, 가엾은 너를

하늘이 잠시만 보살펴주었더라면

무한한 숲을 장전했던 그 맑은 연두는

마음껏 관지觀止의 공기방울을 들이키며

너른 세상으로 걸어갈 수 있었을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낡은 관행이

우둠지를 넘보는 사이 영문도 모른 싹들은

끊임없이 네 뒤를 따라가고

귀밑머리 하얘진 친구는 박제된 연두를 찾아 헤매다가

체온이 채 식지 않는 비문 앞에서 무너지곤 했다

이 땅의 청춘들은 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와 멀어져야 하는지,

물음표를 대필하던 재목마저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갈잎으로 흩어지고

한 번도 초록에 가닿지 못한 잎새들이

우리의 평안을 염원하며 기꺼이 시들어간 현충원에는

탄식의 메아리가 빛바랜 역사로 발굴되길 바라지만


저기 저, 끝자리 아까운 연두물이 또 흘러내린다



#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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