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_겹

MAY 17. 2019

by AERIN




겹 by 김경미

1
저녁 무렵 때론 전생의 사랑이 묽게 떠오르고지금의 내게 수련꽃 주소를 옮겨놓은 누군가가 자꾸 울먹이고

​내가 들어갈 때 나가는 당신 뒷모습이 보이고
여름 내내 소식 없던 당신, 창 없는 내 방에서 날마다 기다렸다 하고

2
위 페이지만 오려내려 했는데 아래 페이지까지 함께 베이고

나뭇잎과 뱀그물, 뱀그물과 거미줄, 거미줄과 눈동자, 혹은 구름과 모래들, 서로 무늬를 빚지거나 기대듯 지독한 배신 밖에는 때로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

3
그러므로 당신을 버린 나와
나를 버린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청순하고 가련하고

​늘 죽어있는 세상을 흔드는 인기척에 놀라 저만치
달아나는 백일홍의 저녁과
아주 다시 많이 태어났는데도 외롭다고 내게로 와 겹치는
당신의 무릎이 또한 그러하고



#1일1시 #시필사 #겹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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