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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Mar 14. 2020

먼저 맞는 매가 낫다?

코로나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마음자세

테네시는 그래도 내륙지방이고 큰 도시도 별로 없어 중국, 한국, 일본,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하는 동안 그나마 조용히 지내왔었다. 그런데 어제(3월 12일) 오후 아이들 학교 행사가 코로나-19 전파의 방어적인 대안으로 취소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 행사 때문에 오후 약속을 다음날로 미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붕 뜬 시간을 농구수업에 참가하기로 했다. 조지아 출장 중인 남편은 학교 행사가 미뤄졌는데 농구를 해도 되냐며 유난스러운 걱정을 떨었지만( 한국에서 줌바 수업에서 퍼졌다는 소식 때문에 겁이 더 난 듯) 우린 농구 수업으로 향했고 농구수업에 막 들어가려는 길에 낙스 카운티 스쿨에서 전화/문자 서비스가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비해 학교 시설을 철저히 청소(deep clean) 하기 위해 금요일에 학교를 닫기로 한다고 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에 지역 뉴스를 확인해 보니 낙스 카운티에서 1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단다. 다행히 외국에서 걸려 온 케이스고 환자의 증상도 경미해 자가격리 중이란다. 

벌써부터 모인 부모들은 다음날 갑작스레 근무 스케줄을 바꾸던지 아이 보육 서비스를 찾느라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전화하기 바쁘다.  다음 주가 봄방학이라 맞벌이 부부들은 벌써 월차나 스케줄 조정을 해 가며 아이 보육을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 해 놨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이다.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일 한다지만 일 안 하고 아이들을 키우긴 힘드니 말이다.


이미 지난 주중에 뉴욕에 사는 고모가 코로나 때문에 학교 휴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선 남편은 봄방학 주간 잡아놓은 여행도 다 취소하고 근처 산에나 등산하면서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러려면 일단 먹을 식량부터 비축해야 한다. 코스코에 가서 기름도 넣고 장도 볼 겸 농구 수업을 끝내고 늦은 장을 보러 코스코에 갔는데 주차장부터가 가관이다. 7시 반 늦은 주중 시간이라고 말하기엔 주차공간조차 없는 상황. 다행히 카트는 넉넉히 있어 매장 안에 들어섰는데 평소 와는 아주 다른 패턴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전자제품, 가구, 옷, 책, 살림살이 등엔 텅텅 비어있고 음식 쪽엔 전쟁을 치른 듯 빈 박스만이 널려있다. 냉장고에도 대부분의 고기가 다 나갔고 대썰어놓지 않은 대용량 고기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4.99 닭도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양파도 없고 과일도 빨리 상하는 딸기만 좀 쌓여있다. 다행히 마지막 상추 한봉과 시금치 한봉을 건졌다. 휴지가 필요하진 않지만 정말인가 싶어 휴지 섹션을 돌았는데 클리넥스까지 싹 비었다. 되는대로 업소용으로 마련된 화장실용 페이퍼 타월을 들고 가는 가족들도 몇몇 보인다. 남편이 면을 사 오라 부탁하길래 둘러보니 스파게티 면도 라면도 싹 다 나가고 없다. 야채를 먹일 생각에 통조림 섹션을 갔다 빈 공간만 구경하고 발길을 돌렸다. 한 벽면을 다 채워있던 식빵 섹션도 텅텅 비었다. 


사람들 카트가 아래위로 가뜩 채워져 있어 남들은 뭘 사나 봤더니 역시 미국은 미국이다 싶다. 캔 수프, 맥엔 치즈 박스, 치킨 너겟, 냉동 피자, 시리얼 바, 베이컨, 햄, 햄버거 페티 등등 당장 굽거나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건강을 생각한 사람들은 종합비타민이나 비타민 C, 프로틴 파우더, 또 만일을 대비해 감기약도 엄청 구매를 해 간다.  줄은 또 얼마나 긴지 양쪽으로 늘어선 줄이 매장 뒤쪽 고기 섹션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래도 다이어트 중이라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퀴노아와 현미를 한 봉씩 사고 샌드위치용 햄도 샀고 토르티야와 닭가슴살을 사서 얼렸다. 빵은 집에서 밀가루 반죽을 해 싸워도 브래드를 구워 먹으면 되고 집엔 아직 콩, 흰쌀, 지난번 해 놓은 김장 김치가 많으니 걱정이 없다. 클로락스 종이나 일회용 장갑 등 회원당 제한하여 판매하는 품목들을 써 놓은 종이가 계산대에 붙여져 있으나 우리는 그 어느 것도 해당사항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이 시간에 쇼핑을 온 모든 사람들에게 이미 너무 늦은 쇼핑이었는지 그 목록에 쓰인 상품들은 이미 다 팔린 지 오래다. 겔런당 $2.00 도 안 되는 기름 값은 언제 봤던가? $1.899에 기름을 넣으며 기억을 더듬어 보니 2000년 초반쯤 대학시절에 이 정도 가격에 기름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교회에서 장문의 이메일이 왔다. 교회 방역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직원 및 봉사자는 허그와 악수 금지, 작은 증상이라도 보이면 예배 참석을 하지 말고 온라인 예배를 볼 것을 권유하며 주일학교에 교사가 부족할 수 있으니 당분간 아이를 데리고 예배를 보는 불편을 감수해 달라는... 학교에서도 이메일이 왔다. 5학년 안전반(safety team) 아이들의 워싱턴 D.C. 졸업여행이 취소됐다는 이메일이다. 앞으로 두 달이나 후 여름방학에 있을 일인데 벌써부터 취소한다니 미국이 앞으로 2달은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단 생각을 하고 있구나 정부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었다.


남편 봉급이 들어오는 주라 빌 페이를 하고 각종 계좌를 확인하기 위해 여기저기 온라인 계좌를 확인 해 보니 주식이 떨어져 아이들 학자금 계좌의 돈이 딱 작년 4월만큼 줄어있다. 우리 아이들이야 8년 후에나 대학을 들어가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지만 당장 올 8월에 입학할 12학년 학생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겠나 싶어 그나마 위안을 가져본다. 남편 401K 어카운트를 확인 해 보니 이것 또한 작년 4월 잔액까지 떨어져 있다. 작년 한 해 20% 이상 성장을 해서 좋아했던 일이 다 꿈속의 일인 양 허무하게 다가온다. 아직 일 할 날이 많고 100년에 한 번 온다는 게 지금 왔으니 120년을 것뜬하게 살 우리는 지금 당장 은퇴를 준비해야 할 어르신들에 비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 널뛰기 중인 주식은 정신을 못 차리고 금값이랑 주식이 함께 곤두박질치다 이젠 거꾸로 한참 오르던 25년 국채도 너무 정신없이 올랐던지 다시 곤두박질을 치더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사람들 말에 인 벌스를 사는 날이면 주식이 5% 오르고 그래서 주식을 다시 샀더니 다음날 주식이 10% 내리더란다. 워린 버핏도 일생에 첨 있는 일이라고 그러는데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태풍이 다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수습을 해야 할 터이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더 낫다고 한국 소식에 매일 뉴스를 보던 우리였는데 정작 우리 차례가 다가올수록  더 불안에 떨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은 출장을 가서도 대구 경북 출장자가 많은 애틀란타 자동차 업계에서 한국 음식점과 한국 그로서리는 들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근처 자동차 업계에 대구에서 온 출장자들을 자가 격리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했다며 우리 동네 중국 음식점이며 한국 중국 슈퍼마켓에도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오후에 UTK 캠퍼스에  모임을 갔더니 50명 이상 모이는 수업과 행사는 모두 취소가 되었으나 우리 모임은 거기에 해당사항이 없으나 혹시 관계자들과 참가자들이 타주에 방문을 했을 경우 2주간 모임에 참가하지 말아 줄 것과 어떠한 유사 증상이 있더라도 참가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또한 앞으로의 사태에 대비해 온라인 참가를 원할 경우 언제라도 온라인으로 참가해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국의 의료체제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가 의구심을 품는 기사들이 넘쳐흐르고 보험이 없는 늙은 사람들은 그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들도 떠돈다. 이미 부익부 빈익빈이 가장 현실화된 미국 사회에서 이번 사태를 전국에서 겪고 나면 저소득층은 또 살아남더라도 의료비 때문에 빚더미 위에 설 테고 또 많은 중산층의 임금 노동자들은 의료비로 인해 중산층에서 굴러 떨어져 저소득층에 정착하게 될 거라는 소리가 떠돈다. 설국열차에서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일부러 폭동을 일으키는 것러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세계 2차 대전 후 끊임없이 발전만 해 온 인류에게 다가 온 자연재앙인 걸까? 잘 사는 나라일수록 점점 고령화가 되어가고 있고 사회적으론 돈도 안되고 세금이나 축 먹는 노인들이 적자생존이란 자연의 법칙 아래에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다.  그동안 약물과 의료기기의 혜택으로 연명을 해 오던 고령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겐 가장 취약한 존재라니 그들이 떠나면 낭비되던 의료비용의 절감이 젊은이들에게 나눠질 수 있을 것인가? 이탈리아에서 80대 이상 고령의 만성질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포기하고 치료하면 살만한 젊은 사람들을 위주로 선택진료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2020년 13일의 금요일은 죽음의 악령들이 검은 옷을 입고 다가오는 것처럼 어둡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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