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A를 받은 꾸미에게 A 한 과목 당 $2씩(동생은 과목수가 많아 A를 12개 받아서 형평성을 따져 2배가 됐다) 해서 $12를 줄 테니 사고 싶은 걸 사라고 했더니 엄마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었다. 내가 난 필요한 건 이미 다 가져서 더 이상 가질 게 없다고 답하니 꾸미가 바로 그래서 자신이 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사줄까 하고 선물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했을 때 쓸게 없어 작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이 12살에 벌써 물질에 대해 통달을 했다.
대견하고 또 감사하다.
결국 꾸미는 10불은 친구들을 위해 선물을 사고 2불은 저금을 했다.
기쁨이는 12불 중 6불은 누나와 내 선물을 사 주고 나머지 6불은 캔디와 풍선껌을 사 먹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아낌없이 캔디와 풍선껌을 나눠줬다.
백수로 산지 벌써 9년이 다 되어가는데 다행히 남편을 잘 만나 내가 노동으로 밖에 나가 벌지 않아도 필요한 건 다 가졌고 몸에 필요한 이상 음식도 잘 먹어 넉넉히 살도 쪄 있다. 부모를 잘 만난 덕에 가끔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돈을 채워주시기도 하신다. 필요한 건 다 가져서 별로 살 것이 없으니 차곡차곡 저축하다 보니 은퇴자금도 꽤 모은 덕에 남편이 은퇴하고 나면 지금 남편이 버는 돈 보다도 거 많은 돈을 다달이 110세까지 받을 수 있단다. 그런데도 나를 둘러싸는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빌딩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일까 봐하는 걱정 때문이다.
밖에서 자기 커리어를 쌓는 이들을 보면 나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고 여성 인플로언서인 김미경의 강의나 유튜브를 보고 있자면 집에 처박혀 나처럼 사는 건 꿈도 미래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감사하게도 남편은 니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이런 날 인정해 주니 결혼은 참 잘한 것 같다.
텃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바느질과 뜨개질을 해서 필요한 걸 만들고, 꼬박꼬박 작은 것도 재활용을 하고, 원재료를 사서 음식을 해 먹고, 빵을 굽고, 책을 읽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애들 공부를 봐주고, 애들과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주식으로 돈을 벌어 저축도 하고 기부도 하고... 그 이상 뭔가 있을 것 같은 답답한 마음에 무슨 직업을 가지면 좋을까 궁금한 마음에 MBTI 성격유형 적성검사를 했더니 INFJ-a 선의의 옹호자라서 난 그냥 종교인, 작가, 좋은 부모, 자선가가 알맞단다. 하나님 말씀데로 살려고 노력하니 날 따르는 신도가 있지 않아도 난 이미 종교인일 테고, 브런치에 글을 쓰니 돈을 벌진 않아도 작가고, 아이들이 아직 엄마의 허그와 키스를 갈구하니 좋은 부모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부모역할은 해 온 듯하고, 정기후원과 비정기 후원을 마음이 가는 데로 하고 있으니 그 금액이 어떻게 됐는 자선가가 맞긴 맞다. 다시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듯한 길이 막힌 미로에서 뱅뱅 도는 기분인데 남편은 나 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그런 내가 부럽단다.
또 다른 답을 찾고자 책을 열었는데 이 책 한 권이 내게 위로를 해 준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내가 살아오는 방식이 답이란다. 미쳐서 한쪽 방향으로 좀비처럼 막다른 길인 줄도 모르고 돈만 바라보며 고성장만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 속에 나처럼 살아야 길이 생긴단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기 위해선 5G 시그널이 빵빵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듯 인생에서 길을 찾기 위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가 짱짱하게 연결되어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