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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stas Dec 23. 2020

여행준비 전쟁준비

기저귀와 2인분의 짐이 담긴 45리터 배낭

"엄마, 미국 대통령은 퇴원했어요?"

어느 날 이제 곧 다섯 돌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물었다. 코로나에 확진된 트럼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뉴스를 언젠가 귀동냥한 모양이다.


27개월 아들과 한 달간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들었던 여러 이야기 중에 '욕심'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일, 아이에게 당연히 희생해야 하는 엄마가 자기 욕심을 차리는 여행이라는 뜻이겠다. 물론 이 여행을 가자고 한 것은 아들이 아니라 나였지만, 그리고 이 아이는 2년 반이 흐른 지금 여행길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티브이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가장 즐겨보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다. 나는 무엇보다 이 아이가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그냥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여행 계획을 SNS에 올리자 회사 선배가 오소희 님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라는 책을 집으로 보내주더라. 36개월 아들과 둘이 한 달간 터키를 여행한 엄마가 쓴 여행기다. 프로필을 통해 본 그녀는 영어도 유창하고 여행 경험이 많아 보였다. 아이도 엄마 영향으로 말 배우면서부터 국어와 영어를 같이 익혔다 한다. 내 회화실력은 생존 영어 수준이고, 아들은 아직 우리말도 서툴렀다.

출발하는 날 내 45리터 배낭 안에는 기저귀를 포함 아이의 짐까지 2인분이 모두 담겼다. 기저귀만 뺄 수 있었어도 짐이 얼마나 단출했을까. 태국에서 말레이시아 이동과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이동 비행 편과 숙소 예약은 출발 전 미리 했다. 그러나 27개월 아이의 발은 절대 계획표대로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의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다닐 것을 마음먹고 있었다. 이 아이는 내 여행의 짐이 아니라 동행이다. 이 아이가 보는 것, 이 아이가 동행으로서 원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할 생각이었고, 현지에서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짊어 멘 큰 배낭만큼 단단하게 마음에 담았다.


출국 --> 치앙마이 --> 빠이 --> 치앙마이 --> 쿠알라룸푸르 --> 말라카 --> 조호바루 --> 싱가포르 --> 롬복 --> 트라왕안 --> 우붓 --> 누사두아 --> 꾸따 --> 귀국


이 계획으로 26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정확히 일주일 후 직장으로 복귀했다. 육아휴직 후 복직, 이것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전쟁의 시작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 전쟁을 앞두고 마음의 무기를 벼리는 기분으로 그렇게 우리는 떠났다.

어린 동행이 있으니까,

첫째는 안전

둘째는 경험

마지막이 모험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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