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제 곧 다섯 돌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물었다. 코로나에 확진된 트럼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뉴스를 언젠가 귀동냥한 모양이다.
27개월 아들과 한 달간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들었던 여러 이야기 중에 '욕심'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일, 아이에게 당연히 희생해야 하는 엄마가 자기 욕심을 차리는 여행이라는 뜻이겠다. 물론 이 여행을 가자고 한 것은 아들이 아니라 나였지만, 그리고 이 아이는 2년 반이 흐른 지금 여행길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티브이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가장 즐겨보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다. 나는 무엇보다 이 아이가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그냥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여행 계획을 SNS에 올리자 회사 선배가 오소희 님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라는 책을 집으로 보내주더라. 36개월 아들과 둘이 한 달간 터키를 여행한 엄마가 쓴 여행기다. 프로필을 통해 본 그녀는 영어도 유창하고 여행 경험이 많아 보였다. 아이도 엄마 영향으로 말 배우면서부터 국어와 영어를 같이 익혔다 한다. 내 회화실력은 생존 영어 수준이고, 아들은 아직 우리말도 서툴렀다.
출발하는 날 내 45리터 배낭 안에는 기저귀를 포함 아이의 짐까지 2인분이 모두 담겼다. 기저귀만 뺄 수 있었어도 짐이 얼마나 단출했을까. 태국에서 말레이시아 이동과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이동 비행 편과 숙소 예약은 출발 전 미리 했다. 그러나 27개월 아이의 발은 절대 계획표대로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의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다닐 것을 마음먹고 있었다. 이 아이는 내 여행의 짐이 아니라 동행이다. 이 아이가 보는 것, 이 아이가 동행으로서 원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할 생각이었고, 현지에서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짊어 멘 큰 배낭만큼 단단하게 마음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