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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stas Dec 24. 2020

치앙마이에서 빠이까지, 델마와 루이스처럼

700개의 커브를 세시간 운전하면 닿을수 있는 곳

치앙마이로 가기 위해서는 방콕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직항도 있지만 비싸다. 하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아이라, 기내식을 싹싹 비우고 기내 화장실에서 큰일까지 볼만큼 비행기에 잘 적응했고, 돈므앙 공항에서 내려 한바탕 뛰어주고 다시 치앙마이행 비행기를 갈아타는 여정 자체가 이 아이에게는 즐거움을 주었다. 

보통 딸보다 아들을 키우는 게 세 배가 더 힘들다고 한다. 그런 아들들 중 우리 하하는 가장 컨트롤이 힘든 아들 축에 든다. 아들 키우는 지인들 열의 아홉은 "남자아이가 다 그렇지." 하고 얘기했다가 실제로 우리 하하와 같이 다니고 나면 나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이 아이는 도무지 엄마 옆에 나란히 있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이 아이는 나를 앞질러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짐을 찾는 컨베이어 벨트에서도 자기가 우리 짐을 찾겠다며 내 앞에 섰다. 한 달 여정을 준비하며 꿈에도 나올 만큼 가장 컸던 걱정은, 아이를 놓치는 것. 실제로 몇 번 내 시야에서 사라진 하하를 찾아 헤매기도 했지만, 나는 여행 내내 나의 어린 동반자가 든든했다.  

27개월 아들과 둘이 배낭여행이라니.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엄마 아빠들의 로망일 이 일을 지금 우리가 해내고 있다. 그리고 지나는 모든 길에서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봤고 미소를 보내 주었다. 연신 감탄사인지 무슨 말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며 종종거리며 뛰어다는 조그만 남자아이와 함께하는 배낭여행자가 신기했으리라.


치앙마이. 지금은 포털사이트에 치면 '한 달 살기'가 연관검색어로 먼저 뜨는 곳. 우리가 갔던 시기가 3월 말이었으니, 치앙마이 대기가 안 좋을 때였다. 지금은 오히려 코로나를 거치며 마스크 착용이 필수라 신경을 덜 쓰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 아이 키우는 이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미세먼지였다. 북방의 장미 치앙마이는 온통 오토바이 매연에 하필 화전 시즌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하하는 재채기와 콧물이 조금 있었는데, 공기 탓인지 치앙마이에 있는 내내 호전될 기미가 안보였다. 아, 이 지구를 어찌할 것이냐.

하하는 코끼리를 보고 싶다고 했다. 코끼리 체험과 사육방식에 대해 여러 비판의 글을 읽었던 터라 조심스러웠지만, 코끼리를 타는 게 아니라 목욕시키고 같이 산책하는 체험은 괜찮겠다 싶었다. 그때 하하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영국 애니메이션 <Peppa Pig>였고, 어디서든 물웅덩이만 나오면 뛰어들어가 폴짝폴짝 뛰며 "Muddy Puddles" "Muddy Puddles"을 외쳐대던 시기였으니, 코끼리 진흙 목욕 계획을 알려주자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에겐 한 달의 시간이 있었고, 비행 편이 예약되어 있는 국가와 국가 이동 외에는 여정을 최대한 현지에서 상황에 맞게 조정할 계획이었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도 모두 무료 취소가 가능한 예약으로 했기 때문에 그때그때 변경해 가며 움직였다. 


코끼리를 보고 구시가지에서 빈둥거리던 우리는 공기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Pai에 가보기로 했다.


빠이는 치앙마이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있는 작은 마을이다. 히피들의 천국,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고들 한다. 가는 대중교통은 없고 여행자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는 차량 렌트를 선택했다. 27개월 난장판 아들과의 배낭여행은 나의 선택이지만, 아이가 다른 여행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은 내 여행 계획에서 중요한 철칙 중 하나였다. 700개의 커브를 지나며 세 시간을 가야 하는 좁은 미니밴에서, 모든 것이 새롭고 놀라울 이 아이가 다른 여행객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하는 다른 사람을 밀치고 들어가서라도 경치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싶을 것이고, 갑자기 큰 볼일 보고 싶을 수도, 험하게 달리기로 유명한 여행자 버스에서 멀미가 심해 잠시 쉬기를 원할 수도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차나 오토바이를 빌려 빠이로 가는 여행객은 많다. 한인 렌터카 업체에서 차와 카시트를 빌렸다. 운전 난이도는 높은 편이다. 대관령 정도? 해외에서 운전은 처음인 데다가, 빠이 가까이에 가서는 커브가 너무 심하고 잦아져 바짝 긴장하며 운전했다. 빠이를 운전해서 갈 때 커브보다 더 조심해야 할 건 여행자들의 오토바이다. 진짜 많은데, 숙련자 아닌 초보들도 많이 오토바이를 빌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직까지 수동기어 차량을 고수하는 나름 베스트 드라이버니까. 


출발할 때 뒷좌석에 카시트를 설치했는데, 하하가 잠들고 나니 커브 때마다 머리가 너무 심하게 꺾여서 중간에 차를 세우고 조수석으로 카시트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운전하는 엄마 옆에 나란히 앉은 데다가 구불구불 길은 만화 같고 창밖으로 오토바이들이 쉭쉭 지나가니, 하하는 머리끝까지 에너지가 충만해졌다. 그렇게 세 시간을 달려 빠이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그냥 모든 게 다 좋았다. 여기가 바로 빠이구나.


흥분한 건 하하만이 아니었다. 운전대 앞에 둘이 나란히 손잡고 앉아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델마와 루이스>처럼, 세상아 다 덤벼라 하며 내 심장도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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