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에서 꾸따로 넘어가기 위해 여행자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누사두아를 패스하기로 했기 때문에 꾸따가 마지막 여행지였고, 사흘뒤 귀국을 앞두고 이제 길 위의 생활이일상이 되면서 낯선 땅에 대한 긴장도 어느 정도 풀려있던 즈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무튼.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하하가 저만치 앞 길가에서 아이스크림집을 발견하고는 또 늘 그래왔듯 신이 나 혼자 뛰어갔다. 지난 3주간의 여행을 통해 행동양상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하하의 종횡무진에 대한 예상범위가 어느 정도 머릿속에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도 한껏 여유로워진 상태였다.
그 일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다. 아직도 생각하면 어리둥절하다. 하하가 소리를 지르며 놀라서 내게로 되돌아왔는데, 앞을 보니 길가 쪽에 내어놓은 아이스크림집 테이블 밑에 큰 개가 한 마리 심드렁하게 앉아 있더라. 하하는 원래 길게 우는 아이가 아니라서 잠시 우는 듯하다 금방 멈추고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고, 나는 뛰어갔다가 큰 개를 보고 놀랐나 보다 가볍게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잠시 뒤, 하하의 발목 위쪽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했다. 2-3센티 정도 가로로 일직선 상처. 주변을 둘러보니 대충 그 정도 높이 위치에 각이진 낮은 시멘트 턱이 보이길래, 놀라서 급히 개를 피하다가 거기 긁혔나 보다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는 그렇게 룰루랄라 우붓을 떠나왔다.
묘했던 건, 이상하게 꾸따로 넘어오는 버스 안에서, 그 아이스크림집 주인인 어린 아가씨와 마주친 눈빛이 자꾸 생각이 나더라는 것. 뭐라고 해야 할까, 곤란해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난처해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숙소를 잡고 잠자리에 들기 전 목욕을 시키고 로션을 발라주는데, 종아리에 잇자국이 보이는 게 아닌가. 이빨자국은 희미했고 피부가 절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관없는데, 가로로 나있던 앞쪽 상처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 개의 이빨이 피부를 뚫은 거다. 아마도 개가 다리를 입으로 물자마자 하하가 놀라 빼면서 반대쪽은 송곳니에 긁힌 게 아닌가 싶다.
물렸구나. 물렸었구나.
식은땀이 났다. 우리나라에서라면 개에 물렸다는 게 걱정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개에 물렸을 때 광견병보다는 세균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 걱정이고, 사람에게는 전염된다면 공수병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광견병 전염 사례가 이제는 없다고 해도 될 만큼 매우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난 점점 심각해졌다. 감염이 드문 것이지, 감염되고 즉각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을 때는 치사율이 높았다. 그리고 검색에 따르면 발리는 몇 년 전 광견병 위험지역으로 국가적 비상이었다는 것이다. 그 개는 묶여있지도 않았고 이미 우붓을 떠나왔기 때문에 들개인지 집개인지, 주사를 맞은 개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 아이스크림집 아가씨의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스크림집 방문이 대략 오후 4시쯤, 개에 물렸다는 것을 인지한 시간이 오후 10시.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정보검색으로 나도 그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광견병 개에 물렸다면 즉시 광견병 면역 글로불린과 백신을 접종해야 하고 한 번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며칠간의 간격으로 여러 차례 반복해서 백신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잠복기는 평균 3~8주이나 아주 드물게 수 일 만에 발병하거나 수년 후에야 발병하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영사관에 전화를 하고, 병원을 검색하고, 광견병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영사관에서는 인도네시아 의료체계가 열악하다며 백신이 병원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 귀국일정을 앞당기면 어떻겠냐고 권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침착해야 했다. 높은 가능성이 아니라고 해도, 잠복기가 수년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하면 28개월아이의 앞날을 어찌 안심할 수 있을까. 지금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몇 년이 지나도록 두고두고 걱정이 가시지 않을 일이었다. 귀국 편 비행기를 적절히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된다고 해도 만 하루가 지날 거고, 여기서 지금 당장 백신을 맞힐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맞다는 판단을 했다.
수소문 끝에 영사협력원을 대동해 꾸따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으로 자는 아이를 안고 갔다. 우리나라는 지금 백신을 맞으려면 일반병원에는 없고 미리 한국희귀의약품센터에 연락해 백신을 구해야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선 광견병이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다행히 그 병원이 백신을 보유하고 있었고, 자정께 에는 1차 접종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챙겨 온 진료기록을 제출하고 국내 병원에서 두 번의 백신을 더 맞혔다. 그날 목욕시키고 나서 로션을 종아리에 안 발라줬다면, 그래서 그 잇자국을 한참 뒤에나 보게 되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나는 평상시 매일 아이의 전신에 로션을 발라주는 꼼꼼한 엄마는 아니다. 설사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아이가 성장하는 내내 완벽하게 불안을 떨쳐버리고 살진 못했으리라.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고, 그렇게 빠르게 대처를 할 수 있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또 기꺼이 늦은 시각 병원까지 동행해 주고, 불안감에 의사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내 말을 피곤해지도 않고 통역해 주었던 영사협력원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렇게 마지막 여행지 꾸따에서의 악몽과도 같았던 밤은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