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조호르바루를 거쳐 쿠알라룸프르 국제공항에서 인도네시아 룸복으로 가는 비행 편을 미리 초저가에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싱가포르에서는 5박 6일로 일정이 정해져 있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국경을 육로로 넘는 방법은 버스와 기차가 있는데 우리는 기차를 택했다. 조호르바루에서 싱가포르 우드랜드까지 국가와 국가의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단 5분. 묘한 기분이었다. 싱가포르에 들어와 우리는 전철을 타고 오차드로드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전철 창밖으로 본 싱가포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일본 홍콩 등 도시여행에 그다지 흥미를 못 느꼈기에 큰 기대 안 했는데, 싱가포르는 도시더라도 녹음이 우거져 있어서 삭막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느낌이 많이 달랐다. 하하는 현지 아이들과 나란히 창밖을 내다보며 싱가포르의 첫인상을 어떻게 느꼈을까.
오차드로드에서 에어비엔비를 통해 빌린 숙소는 1층에 주방과 공용공간이 있고 층마다 두세 개씩의 방이 있어 각각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의 다층 주택이었다. 세 번째 나라 싱가포르는 물가가 높은 나라였고,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거쳐온 탓에 상대적으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숙소에 짐을 놓고 허기가 졌던 우리는 바로 식당을 찾아 나갔다. 막 도착한 터라 아무 준비 없이 멀리 이동할 수가 없었고, 가까운 곳에 마땅한 식당이 안 보여 근처 쇼핑몰 식당을 찾았다. 간단히 시켰는데도 2만 원.
밥을 먹고 나와 그 쇼핑몰에서 잠깐 하하를 놓쳤다. 마구 혼자 앞질러가는 아이를 미처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그 층을 한 바퀴 다 돌았는데 만나지 못하자 초초해졌다. 밥때가 지나서 애를 빨리 먹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숙소 전화번호를 아이 가방에 미쳐 넣어놓지를 못하고 왔다. 둘이 서로 찾다 엇갈린 모양이다. 한 바퀴 더 돌고도 하하를 발견하지 못했다. 있던 층을 벗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큰일이다. 머릿속으로 여러 경우의 수를 빠르게 돌려보며 뛰어서 다시 한번 쇼핑몰을 돌았다. 하하가 층을 벗어났을 가능성보다는 아직 여기를 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섣부르게 위나 아래로 이동해 찾느라 시간을 지체한다면 걷잡을 수 없어질 수 있다.
다행히 세 번째 돌 때에, 바닥에 주저앉아 울상을 짓고 있는 하하를 발견했다. 하하에게 여행 전에도 몇 번씩 강조했고, 그날도 다시 강조했다. 혹시라도 길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거든, 네가 움직이면 서로 엇갈리니까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있어라. 엄마가 반드시 너를 찾을 테니까.
싱가포르에 머물게 될 6일간 보타닉가든, 동물원, 새 공원, 유니버설, 가든스바이더베이 등 명소들을 두루두루 돌아볼 계획이었다. 보타닉 공원에 가보겠다고 하니까 한인 숙소 주인이 친절하게도 자기 차로 우리를 데려다주었고, 이동하는 동안 싱가포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날씨 이야기, 물가 이야기, 지켜야 할 것들과 가볼 만한 곳들에 대한 이야기. 호텔이나 리조트에 묵으면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전철에서 껌을 씹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공중질서 처벌기준이 높은 싱가포르에서는 하하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잘 단속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 지킨다면, 싱가포르는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여행하기 좋은 나라였다. 전철이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치안도 좋았다.
방 한 칸을 빌렸음에도 십만 원에 육박하는 숙박비용이 부담스러워 우리는 차이나타운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한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호스텔을 찾았다. 두 곳의 후보군이 있었는데, 첫 번째 갔던 곳에서는 방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하하 때문에 아이 안전을 이유로 거부당했고, 두 번째 찾아간 호스텔 도미토리에서 묵을 수 있었다. 단 다른 손님들이 오게 되면 숙소를 옮겨달라는 조건이었다. 하하는 이층침대를 너무 마음에 들어 했고, 나는 단 하루를 묵게 될지언정 숙박비용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그곳에서 이틀을 묵었다. 27개월 하고도 24일을 살은 우리 아들 생애 첫 도미토리 경험이다.
열흘 지나면서 발에 물집이 잡히고 발목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싱가포르는 멋진 곳이었다. 하하는 차이나타운 푸드센터의 음식들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특히 가든스바이더베이에 갔을 때, 왜 사람들이 돗자리나 천 같은 것들을 가져가는지 나조차도 처음엔 몰랐지만, 음악이 나오고 인공나무들이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자 하하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 벌렁 드러누웠고, 나도 사진 찍기를 멈추고 그 옆에 누었다. 맨바닥이었지만 상관없었다. 같이 누워 슈퍼트리쇼를 감상하고 그 길을 같이 걸은 건 평생 안 잊힐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