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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stas Dec 28. 2020

아이 짐을 줄이면 얻게 되는 것들

다시 치앙마이

캐리어가 아니라 배낭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가 천방지축 뛰어다니니 두 손을 자유롭게 쓰기 위함이 컸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와 함께하는 배낭여행을 꿈꾸지만, 배낭여행족이던 엄마아빠가 자녀가 태어나고 나서는 배낭을 포기하고 캐리어를 선택한다면 그건 그 안에 2인분의 짐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겠다. 짐을 줄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짐을 줄이기 위해서는 포기할 것과 건질 것의 선택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난 옷을 포기했다. 여행에서 찍은 하하의 사진들이 거의 같은 옷인 이유. 사실 더운 나라로의 여행은 중간에 뒹굴다 옷이 더럽혀지는 것을 감안해도 잠옷 말고는 상하의 각각 세 벌이면 충분하다. 난 두 벌이면 되었다. 사진들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좋은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옷이야 뭐. 또 한 가지, 아이가 놀던 장난감들을 가져가지 않았다. 아이가 집에서 놀던 놀잇감들을 다 가지고 가서 여행지에서 그걸로 놀게 할 거면 뭐 하러 돈 들여 힘들여 여행을 갈까.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 몇 개와 잠깐이라도 아이를 혼자 둬야 할 때 요긴한 유아용 동영상들을 챙겨갔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가지는 않았다. 그래야 아이도 나도 여행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현지에서 살 수 있는 소모품은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여행지에서 샀고, 먹을거리는 아이 것도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입에 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그런 자체가 다 여행이니까.  


그리고 어린아이와 단둘이 여행의 몇 가지 노하우가 더 있다. 아이가 잘 때를 활용해야 하는 건 여행지에서도 진리다. 시내에서는 낮에 다니다 하하가 졸려하면 마사지숍부터 찾았다. 간혹 기차나 버스시간이 빡빡한 이동 경로 중에 아이가 잠들거나 하면, 뒤로 배낭을 메고 앞으로 아이를 안고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리와 발에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에 가능할 때 풀어줘야 한다. 특히 동남아 여행에서 마시지는 필수 아닌가.


그리고 이건 우리 아이의 특수성일 수 있지만,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소에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의 짐이나 주머니에 숙소 전화번호를 넣어 두었다. 호텔이나 리조트보다는 주로 소규모 숙소를 이용했고, 빈 방을 물어보는 그 짧은 시간에도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주변을 적극적으로 탐색하시는 아드님 때문에 때로는 정중하게 숙박을 거절당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호스트들은 낯선 땅에서 아이를 놓칠까 걱정하는 엄마 여행객을 이해해 주었다.


빠이에서 3일을 보내고 다시 꼬불길을 밟아 치앙마이로 컴백했다. 돌아오는 운전은 갈 때보다 수월했다. 치앙마이로 가는 경로에 있는 자연폭포 명소 Mok Fa Waterfall에 들러 잠시 걷기도 했고, 하하가 뛰어놀 수 있는 식당을 검색해서 찾아 들렀다. 27개월 아이에게 자리에 얌전히 앉아 식사를 하라고 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밥은 먹이되 하하를 풀어놓고 싶었고, 뛰노는 하하를 쫓아 댕기지 않고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도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이 길에서는 분명히 그런 장소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양 떼목장과 넓은 들판이 함께 있는 카페다. 특별히 유명하지는 않지만 치앙마이-빠이를 이동하는 가족여행객들이 왕왕 찾는 곳인 듯했다. 이곳에 하하는 양에게 먹이를 주고 닭들을 쫓아다녔다.


그렇게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온 우리는 마음이 느긋해졌다. 빠이가 우리를 무장해제 시켜주었다. 여행에 대한 긴장, 낯선 나라에 대한 경계, 이런 것들로부터. 나이트 사파리에 가서 하하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더 가까이서 보고, 남민해민 거리를 구경했다. 하하는 또래의 여행객이나 동네의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아직 우리말이 서툰 아이라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교감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했다. 아이들은 언어나 활자를 익히고 미디어를 접하기 전, 오감의 최대치를 활용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 시기를 최대한 길게 주고 싶어 난 하하에게 한글을 늦게 가르쳤다.


하하의 감정 표현이라고는 "하하는 너무 행복해요." "여행이 좋아요." "우와 여기 너무 멋져요." "엄마가 최고예요." 이런 정도였지만, 부정확한 발음으로 짧은 문장을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얼마나 상기되어 있는지 그 눈이 얼마나 반짝거리고 있는지, 아이가 말할 때 그 얼굴을 찬찬이 들여다보는 부모라면 알 수 있다. 이렇게 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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