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위에서도 우리가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무슨 일이든 한 번 손을 대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시작해 버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사람을 그 자리에 끝까지 앉혀 놓는다. 그만두는 것도, 돌아서는 것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미 끝난 것처럼 느껴지는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서지 못한다. 이쯤이면 포기해도 될 것 같으면서도, 막상 자리를 떠나려 하면 몸이 먼저 말을 듣지 않는 순간들 말이다.
피터 브뤼겔의 「네덜란드 속담」을 들여다보다 보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유난히 시선이 오래 머무는 한 인물이 있다.
그림 속 남자는 불타버린 자리, 그 잿더미 위에 앉아 있는 병사다. 그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막 잡은 듯한 물고기를 모닥불 위에서 조심스럽게 굽고 있다. 불은 아직 살아 있다. 그러나 온도는 애매하다. 조금만 방심하면 생선은 시커멓게 타버리고, 조금만 성급하면 속은 채 익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생선을 굽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불 위에서 무언가를 굽는다는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엄중하다.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병사는 쉬고 있는 것도, 망연자실한 것도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이 타버린 자리에서, 아직 남아 있는 불을 이용해 하나라도 건지려는 시간을 묵묵히 통과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습은 패배의 잔상이 아니라,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였음에도 함부로 자리를 뜰 수 없는 상태에 가깝다. 끝장을 보아야만 하는 상황. 그는 버티는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굿 구경을 하려면 계면떡이 나오도록"
무슨 일이든 착수를 했으면,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참고 견디어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굿판은 멀리서 보면 흥겹다. 하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가 보면 과정은 길고 고되다. 소음은 버겁고, 대목은 지루하며, 때로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만이 마지막에 나누어 주는 '계면떡'을 손에 쥐게 된다. 중간에 적당히 구경하다 빠져나간 이에게 떡은 돌아가지 않는다. 판에 발을 들인 이상, 보상은 오직 견딤이라는 입장료를 끝까지 지불한 사람의 몫인 셈이다.
잿더미 위에 앉아 있는 이 병사는 바로 그 판의 한가운데에 있다.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고, 그렇다고 쉽게 떠날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다. 아직 떠날 차례가 오지 않았기에 그는 자기 몫의 시간을 정직하게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은 찾아온다. 이미 시작했기에,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기에 포기보다 견딤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되는 때 말이다.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무표정한 얼굴, 그만두면 편해질 걸 알면서도 의자를 밀지 못한 채 앉아 있는 깊은 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책망한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왜 여기까지 와버렸을까.
그러나 어떤 일은 시작한 순간부터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버텨야 할 시간의 문제'가 된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회의감은 패배의 징후라기보다, 아직 판을 끝내지 않았다는 조용한 상태에 가깝다.
잿더미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 끝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계면떡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 자기 몫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지 모른다.
그 견딤의 끝에서, 각자의 손에 마침내 건네질 계면떡이 조용히 쥐어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