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싱가포르 삶에 초점 두기
싱가포르에서의 1년이 지났다. 우리 가족 모두 이곳에서의 삶에 만족했다. 제주국제학교 때와는 달리 이번 여름 방학이 끝나고 다시 서울을 떠나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싱가포르의 삶을 마주할 생각에 오히려 설렜다. 그래서 나는 싱가포르 유학을 잘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는 반대로 싱가포르 생활을 힘들어하는 엄마들도 있다.
오늘은 싱가포르 유학을 고려하는 학부모들에게 아이랑 단 둘이 싱가포르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팁을 적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주 양육자인 엄마가 이곳에 잘 적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살이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아래의 목록은 싱가포르에서의 삶에 적응할 수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내 입장에서 적어본 것이다.
- 싱가포르 유학의 목적은 자녀 교육인 것을 잊지 말 것
- 싱가포르의 정서가 본인과 잘 맞는가
- 한국보다 나은 곳은 없다는 것을 알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에서의 삶이 걱정이 된다면, 아래의 목록이 그 걱정들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다.
- 생활체육이 발달한 나라
- 한국과 비슷한 사교육 시장
- 여행하기 좋은 지리적 이점
- 서양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한 영어 부담감
- 유학의 목적은 자녀교육
자녀 교육은 싱가포르 유학의 절대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것 하나만 생각한다면 다른 불편함 들은 해소가 될 것 같다. 본인이라고 왜 싫고 불편한 점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학교에 가는 딸의 모습, 매일매일 배우며 성장하는 딸을 보면 이곳에서의 삶을 감사함으로 여기게 된다. 감사할 여유가 생기지 않다면 적어도 버티게 해주는 이유는 될 것이다.
- 싱가포르의 정서
싱가포르라는 나라의 정서는 나와 잘 맞았다. 필자는 규칙과 질서에 어긋나는 것에 매우 불편함을 느낀다. 유연함과 융통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때마다 바뀌는 절차(진상을 부려서 해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상황)보다는 까다롭더라도 확실하고 통일된 절차가 좋다. 싱가포르의 법과 질서는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모두가 당연히 지키는 이러한 사회가 나로서는 좋았다. 물론 FM대로 이루어지는 절차에 답답함을 느끼는 외국인들도 많지만 말이다.
- 한국과 비교하지 말 것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에게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 특히 의료시스템(건강보험)과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아무리 살기 좋은 싱가포르라 한들 비싼 의료비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게 만드는 느린 AS서비스 신청과 배달, 관공서 일처리 등은 놀라울 따름이다. 그나마 나는 느린 제주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찍이 서울의 생활과 같은 기대는 져버렸다는 것이 이곳에 일찍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해외살이를 하면서 한국과 비교하는 것은 우울한 기분을 부추길 뿐이다. 절대 기억할 것, 한국과 비교하지 말아라
(그래도 싱가포르는 다른 외국과 비교했을 때 빠른 편이다).
가끔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걱정하듯 안부를 묻는다. 딸은 즐겁게 학교에 다니니 걱정 없겠지만 엄마인 나의 삶은 괜찮은지, 혼자 외롭지 않은지를 말이다. 필자는 원래 혼자서도 잘 노는 타입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좋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나름 잘 활용하려고 애쓴다. 아마 제주에서 보낸 시간이 지금 생활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어쨌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될 엄마들에게 슬기로운 싱가포르 생활을 위한 몇 가지 팁을 적어보겠다.
- 생활체육이 발달된 싱가포르
체육학계에서 바라보는 선진국은 대부분 생활체육이 발달된 나라이다. 내가 싱가포르에 처음 와서 느낀 점은 시간대에 관계없이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또한 공원이나 오차드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틀고 함께 체조나 요가, 댄스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뿐만 아니라 이 작은 나라에 필라테스, 요가, 댄스, 테니스 등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필라테스를 했고, 요즘에는 오전에 조깅을 하거나 바레(barre) 스튜디오에 가서 운동을 한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사는 것 같다.
-한국과 비슷한 사교육 환경
사교육은 한국이 최고라고 하는데 이 말에 나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초등 저학년 학부모의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현재 한국 사교육의 가장 큰 단점은 너무 빠른 선행이다. 심지어 학원을 보내려 해도 레벨테스트를 치러야 하니 학원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싱가포르의 사교육은 그나마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같았다. STEM 과목과 언어 관련 과목 학원이 동네마다 있고, 강사진의 학력과 경력도 매우 좋은 편이다. 나라 전체가 교육열이 높다 보니 피어그룹 효과도 좋다. 이 모습이 한국 사교육 환경과 비슷하다고 느낀 점이다. 다른 점은 선행보다는 현재의 학습 속도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우리 딸은 국제학교에 다니지만 집 앞에 있는 로컬 수학 학원에 일주일에 한 번 다니고 있다. 선행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해당 학년에 배워야 하는 수학 개념의 이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았다. 일주일 동안 해야 하는 숙제는 다섯 장 이내이다. 싱가포르 수학 교재는 워낙 유명하기에 따로 언급을 하지 않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피어 그룹 효과와 함께 수학을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
다만 예체능 과목에 대한 기대는 져버리는 것이 좋다. 나라의 역사가 짧다 보니 문화예술의 발달은 만무하고, 예체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매우 약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처럼 자질을 갖춘 예체능 교사가 거의 없어 한국만큼의 사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생활체육이 발달되어 있어 수영, 테니스와 같은 운동 과목은 만족스러운 편이다.
-여행하기 좋은 지리적 이점
국제학교는 방학도 많고 길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방학마다 여행을 가는 가정이 많다. 싱가포르는 해외여행을 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는 나라이다. 우선 가까운 곳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있다.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는 차를 타고 이동이 가능하며, 인도네시아의 빈탄/바탐, 말레이시아의 데사루는 싱가포르에서 페리를 한 시간 정도 타고 이동할 수가 있다. 그리고 짧은 비행으로 태국,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가 있고, 한국에서는 직항이 없는 몰디브도 인기가 많다. 그리고 호주 역시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여행하는 나라이다. 싱가포르에서 호주 서쪽인 퍼스(Perth)까지 5시간 정도, 동쪽인 시드니(Sydney)까지 7시간 정도이니 한국과 비교했을 때 여행이 매우 수월한 편이다. 또한 호주는 싱가포르인들도 유학을 많이 가는 나라이다 보니, 여러 의미에서 호주 여행은 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앞으로의 단기 방학을 주변 국가 여행으로만 계획해도 다 가보지는 못 하겠지만, 이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보려 한다.
- 영어에 대한 적은 부담감
영어를 못 해도 해외살이가 가능하겠지만, 언제나 부담감을 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필자의 영어 수준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어를 텍스트로 공부한 탓에 리딩 실력은 좋으나 스피킹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여러 엑센트들이 섞여있어 나의 코리안 엑센트는 전혀 부끄럽지가 않다. 또한 딸아이의 국제학교 커뮤니티는 워낙 다양한 국가에서 온 가족들이 많고, 그들 대부분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다 보니 영어로 소통하는 데 있어 부담감이 덜 하다. 물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야겠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싱가포르에서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엄마들이 많다.
나는 제주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로 구성된 독서모임에 참여 중이고, 어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와 이따금 점심을 먹기도 한다.
아이와 단 둘이 하는 해외살이가 쉽지는 않지만, 이곳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양육자인 엄마 스스로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