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봄, 마음으로 추는 춤
궁중정재 <춘앵전>
미적 주목은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심코 발생한다. 특히 아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국립국악원의 <춘앵전> 영상을 보던 중 장난감을 가지러 가던 딸아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내 옆에 앉았다.
-엄마 저건 옛날 결혼식이야?
-아니, 임금님을 위해 춤을 추는 거야. 왜 결혼식이라고 생각한 거야?
-예쁜 한복도 입고 머리에 왕관도 썼잖아. 긴 장갑도 끼고.
-그러게. 린이 얘기 듣고 보니까 무용수가 결혼하는 것처럼 예쁘게 입었구나. 왜 저런 옷을 입고 춤을 쳤는지 엄마랑 한 번 볼까?
딸아이가 52개월 무렵 한국민속촌에서 부채춤 공연을 보았을 때만 해도 한국무용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한복을 입고 추는 춤 정도로만 여겼을 것이다. 따라서 춤이라 하면 ‘발레’를 먼저 떠올리는 딸아이에게 궁중정재를 알려주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1. 궁중정재의 <춘앵전>의 형식
-궁중정재에서의 정재(呈才)의 의미: (왕에게) 재주를 바친다.
궁중정재는 임금님이 살던 궁궐에서 무용수가 자신의 재주를 왕에게 보여드린다는 뜻이야. 궁중정재에도 여러 종류의 춤이 있는데 린이가 본 춤은 <춘앵전>이란다. 옛날에 효명세자라는 왕자가 살았는데, 봄날 아침에 나무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를 보고 춤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 춤을 보여드렸지.
-복식
꾀꼬리처럼 보이도록 노란색 옷인 황초단삼을 입는단다. 그 안에는 빨간 치마와 초록색 저고리를 입고 있어. 머리에는 린이가 왕관이라고 생각했던 화관을 쓰지. 그리고 양손에 오색 한삼을 낀단다.
-무대
발레에서의 무대와 다르게 <춘앵전>에서는 돗자리를 깔고 무용수가 그 위에서 춤을 춘단다. 돗자리 뒤 쪽으로는 악공들이 앉아 음악을 연주하지. 그리고 무대의 앞에는 누가 앉을까? 정재가 ‘임금님에게 재주를 보여드린다’라는 뜻이라고 했지? 맞아, 바로 임금님이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앞에 앉는 거야.
-춤의 구성
예전에는 비디오를 찍을 수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춤의 순서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정재무도홀기’ 덕분이야. 춤의 순서와 동작, 그리고 누가 추었는지까지 기록되어 있지. 엄마한테도 있어. 엄마가 대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배웠던 춤이었거든.
<필자가 대학시절 배웠던 춘앵전의 홀기와 창사악보>
<춘앵전>은 시와 노래, 음악, 춤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야. 그래서 궁중정재 중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지지.
‘딱’ 소리가 나는 박을 치면 무용수가 염수를 한단다. 린이가 하는 배꼽인사처럼 말이야. 그리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지. 음악이 멈추면 ‘창사’를 시작해. 창사는 노래 가사인데, 마치 시를 읊는 듯 노래를 부르는 거야.
빙정월하보: 아름다운 여인이 달빛 아래 걸으니
나수무풍경: 비단 옷소매 바람에 흔들리고
최애화전태: 꽃 앞에서 선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우니
군왕임다정: 군왕의 마음에 정이 일렁이네
달빛 아래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면서 옷자락이 바람에 흔들리니 그 모습이 꽃 앞에 서 있는 모습처럼 보여 임금님도 감탄했다는 내용이란다. 꽃을 보면 누구나 예뻐서 환하게 웃게 되지? 화전태는 바로 그런 모습을 말한단다. 이렇게 창사가 끝나면 다시 춤이 시작되지.
2. 자연의 움직임을 담은 춤 동작
린이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춘앵전>의 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움직임을 표현한 동작들이 많단다.
낙화유수(落花流水): 꽃잎이 떨어지고 물이 흐르는 모습을 표현한 동작
탑탑고(塔塔高): (새가) 탑의 계단을 오르는 듯한 동작
비금사(飛金沙): 금빛 모래가 날아가는 듯한 동작
회란(廻鸞): 새가 날개를 펴고 도는 동작
화전태(花前態): 꽃 앞의 선 모습
연귀소(燕歸巢): 제비가 둥지로 돌아가는 듯한 동작
3. 마음으로 추는 춤
아까 엄마가 정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지? 맞아, 임금님께 재주를 보여드린다는 의미지. 그런데 재주를 보여준다는 건 무슨 말일까? 그건 나의 마음을 보여준다는 거야. 예쁘고 멋지게 춤추는 모습보다는 정성을 다해 춤추는 나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지. <춘앵전>의 창사에 ‘최애화전태(最愛花前態)’라는 말이 있었지? 이 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화전태’를 하는 동작이라는 건데, 꽃 앞에선 모습을 표현하는 거야. 이때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듯 웃는 얼굴 표정을 지어내지. 하지만 진정한 화전태는 얼굴이 웃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웃는 모습이야. 그런 마음으로 춤을 출 때 춤은 가장 아름답게 빛나거든.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마음으로 통하게 되어 있어. 노래를 할 때나, 춤을 출 때나. 그리고 엄마가 너를 사랑할 때도 말이야.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린이가 느끼는 것처럼.
관객들은 진심을 다해 춤추는 무용수를 보면서 어머니를 위해 이 춤을 만든 효명세자의 마음을 느꼈을거야.
<조선의 마지막 무동이었던 심소 김천흥>
-심소 김천흥 인터뷰 중에서
화전태는 <춘앵전>에서 보일 듯 말 듯하게 싱긋 미소를 띠는 동작인데, 그건 얼굴이 웃는 게 아니라 정성되고 가지런히 가다듬은 마음이 웃는 거예요.(민족무용학, 허영일, p.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