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 이강, 소수민족쇼

by 프레이야

2002. 1. 7. 계림-관암 동굴, 이강, 소수민족 쇼

아침 6시 10분 조식. 정성이 돋보이는 음식들. 간단한 서양식과 비교됨. 정말 몸매 생각해서 많이 먹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진수성찬 앞에서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우선 먹고 보자. 평소보다 4배는 더 먹은 것 같다. 그리고 중국차도 부지런히 마셨다. 차가 지방질을 분해한다고.

버스를 타고 이강을 향해 가는데, 가는 길이 인상적이다. 공사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흙이 파였다. 울퉁 불퉁한 길을 버스는 흔들 덜컹거리며 갔다. 길옆에 폐허의 집들이 보였다. 전에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이제는 집을 버리고 떠나갔구나. 헗고 낡은 집들을 그냥 두는 것도 중국인들의 느긋한 성격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보니 빨래가 널리고 가끔씩 사람도 보였다. 사람 사는 집이었구나..


길가의 나무들이 노랗다. '겨울이라 나뭇잎들이 말라죽었나?' 땅을 보니 온통 황토흙이 아닌가? 흙물이 튀어서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시뻘건 황토를 보니, 당장 황토 진흙 속에 몸을 던지고 싶다. 온몸에 황토 진흙을 묻히고 오랫동안 그렇게 있고 싶었다. 전에는 황토흙으로 초가집을 지었지만, 지금은 시멘트 바닥으로 흙 밟기가 어렵지 않은가! 황토흙을 트럭으로 퍼가고 싶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했는데 안동의 하회마을에 주목을 했다. 이유는 황토로 만든 자연친화적인 초가집 때문에. 나는 계림의 황토를 감격적으로 바라보았다. 계림은 좋다. 왜? 황토가 많아서. 그리운 황토!


우리의 버스는 이강 가까이 왔건만 계림의 3만 6천 봉우리는 안개 때문에 온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강에 도착해 관암 동굴을 관람했다.


공간이 무척 넓다. 동굴에서 배까지 탈정도니. 동굴 안에는 여러 색의 조명으로 신비감을 더했다. 동굴의 출구는 건물의 3층 높이 정도에 있었다. 우리는 동굴의 위쪽으로 계속 올라왔던 것이다. 유람선을 타러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가마를 들고 관광객을 태워 나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 가파른 계단을 , 그냥 올라가기도 힘든 곳을, 계림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가마 타는데 3만 원. 계단에서 내려와 이강의 유람선을 탔다. 뿌연 안개 때문인지, 느릿느릿 나아가는 배의 속도 때문인지 한없이 한가롭다. 경관이 정말 아름답다. 맑은 강물은 산의 봉우리를 그대로 대칭으로 비추어준다.


유람선에서 내려 걷는데 지게에 물건을 잔뜩 올려놓고 나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지게의 무게에 어깨가 휘어졌다. 중국적이며 동양적인,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전의 우리 엄마 시대의 삶을 보는 듯한 어떤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참으로 가난해 보이는 그들은 가게 앞에 모여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개울물에서 빨래를 하고, 또한 그곳에 쏘가리를 잡아 담가 둔다. 돼지고기를 썰어 파는 모습들, 무심히 앉아 있는 남정네들,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아저씨. 비디오카메라로 이들의 모습을 찍었다. 순진하게 웃으며 기꺼이 나의 모델이 되어주는 순박한 사람들.


가난해 보이는 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많이 하는데 , 화장실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관광객이 나오면 두 손에 귤이나, 땅콩 같은 것을 들고 일제히 외친다. 5개 천 원!, 한국 돈 천 원! 붉은 사탕수수를 파는 여인도 외친다. 두 개, 천 원! 한국 돈, 천 원! 사탕수수를 사면 칼로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천 원어치면 한 보따리 된다. 이곳의 물건 값이 싸다는 것을 실감한다. 관광객으로부터 돈을 버는 중국인은 기본적인 한국어를 한다.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계림 가이드의 권유로 호랑이와 곰이 사는 동물원에 갔다. 호랑이가 얌전히 앉아 있다. 사람이 만질 수 있도록. 곰은 서서 걸어 다닌다. 네발 달린 동물이 두발로 걸으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야성을 잃어버린 맹수들의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조련사는 곰에서 악기를 연주하게 만들었다. 자전거 타기도 가르쳐 주고 공중곡예도 가르쳤다. 물구나무서서 걷기도... 애처로웠다. 인간이 너무도 동물을 못 살 게 군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벌고'.


으스름하게 하루해가 저물 무렵 우린 상비산으로 갔다. 뿌연 안갯속에서 계림의 저녁은 조명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보라색, 초록색, 붉은색... 나룻배를 타고 유유히 계림의 여유를 누려본다.


저녁식사 후 소수민족 쇼를 보러 갔다. 관람객은 우리 일행 외에는 없었다. 무대가 열리고 정겨운 음악과 춤, 그리고 서커스를 보여준다. 소수민족 고유의 춤을 보여주는 그들은 열아홉, 스물 정도의 꽃봉오리 같은 청춘 남녀들이다. 아이 예뻐! 이성에 눈뜰 무렵의 순진하고 부끄럽고 꿈을 꾸는 듯한 모습들. 한국적이기도 하고 중국적이기도 한 이들의 춤을 보며 우리와 중국은 정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호텔에 짐을 푼 황 선생님과 나는 계림의 거리를 걷고 싶었다. 아마 밤 10시가 좀 넘었을 거다. 호텔에서 몇 발자국 움직이자마자, "아가씨, 어디 가요? 야시장 갑시다. 야시장 가는데 5원. 발 마사지? 50원." 끝까지 포기 않고 우리를 따라온 사람들은 오토차 기사들 (오토바이에 리어카 비슷하게 생긴 것이 붙어있다.) 호텔 주변은 컴컴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약 500미터만 가면 큰 도로가 나오겠는데 여기저기서 '아가씨' 부르며 쫓아오니 두렵다.

걷기를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아까의 그 기사가 또 다가온다. 황 선생님은 공부했던 중국어를 유감없이 그에게 써먹었다.

호텔 앞 분수대에 걸터앉아서 오랫동안 그와 이야기했다. 처음에 두려웠지만 얘기를 하다 보니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하다. 오토차 기사가 하루에 버는 것은 30, 40원 (우리 돈 6000원 정도), 그러고 보니 발마사지받고 팁으로 우리 돈 5천 원 준 것이 적은 돈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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