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_9963
몇 년 전, 청주 하이닉스 공장 인근을 지나던 점심 무렵. 뜻밖의 장관을 마주했다.
신호 대기 중,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수백 명의 노동자들—똑같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점심 식사를 위해 거리로 걸어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와, 대단하다!” 그 모습은 어린 시절 새벽시장에서 목격했던, 생의 무게를 묵묵히 지탱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로 나는 스스로 느슨해질 때, 다시 말해 내 일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자책이 들 때, 일부러 그곳을 찾곤 한다. 신기하게도, 갈 때마다 변함없이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땀과 노동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점심 풍경 속에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지금 얼마나 하루를 헛되이 보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솟구친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며 동기부여를 얻고, 또 누군가는 명상이나 독서에서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만약 그런 방법이 없다면, 한번쯤 삶의 현장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새벽 경매를 뛰는 상인들, 도심 건설현장에서 철근을 나르는 노동자들, 혹은 병원 응급실에서 쉴 틈 없는 의료진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진심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만큼 강렬한 동기부여는 없다는 사실을.
결국 인생을 바꾸는 힘은 책 속 문장도, 거창한 강연도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누군가의 모습이다. 그 풍경이 우리 안에 불씨를 다시 지펴주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로 우리를 이끌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