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사위, 인정받을 준비는 되어 있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효자상’과 ‘효부상’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왜 ‘효사위상’은 없을까?”
이 질문이 단순한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늘날 가족 관계에서 사위가 감당하는 역할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부모 세대와 배우자 사이, 때론 중재자이자 조율자로서
묵묵히 가정을 위해 애쓰는 사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덧붙이자면,
나 역시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아내 역시 종종 “당신 정도면 상 줘야 한다”며 웃곤 한다.
그 말이 꼭 상을 바란다는 뜻은 아니지만,
지금 시대에 사위라는 위치도 조명받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계속 남는다.
그 쉽지 않았던 첫 해
결혼 후 맞이한 첫 해는 참 많은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적응과 조율의 연속이었던 ‘생존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매주 본가에 들르다 보니, 아내 입장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리듬이 부담이었을 거다.
일요일 저녁이면 피곤한 감정이 겹쳐지며 자연스럽게 속마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그 상황을 오래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큰 결심을 했다. 유학이라는 선택지로, 삶의 흐름 자체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서로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시도였다.
그 결정 덕분에 우리는 잠시 거리도, 생각도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서로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환경이 항상 평온하진 않았다.
그만큼 외로움과 고립감은 온전히 제 몫이었고, 감정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을 견뎠고 지금의 가족 관계는 아마 그때의 결단 덕분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효사위상’이란 게 있다면,
그 시절의 노력도 후보 자격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28년 차의 사위생활, 나는 지금도 현역이다
결혼 28년 차.
놀랍게도(?) 아내는 시댁과 더 이상 큰 갈등 없이 지내고 있다.
난 이게 다 내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 사이 나는 아내 쪽 가족들에게 스며들었고,
이젠 거의 “처가의 핵심 인플루언서” 수준이다.
장인어른이 병을 앓으신 이후,
두 분의 노후 문제는 우리 가족의 큰 과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건강이 아니었다.
소통의 단절, 그것이 진짜 이슈였다.
장인장모님은 ‘연애’보다 ‘중매’가 일반적이던 시대의 사람들이다.
평생을 살아오셨지만 서로와의 대화는 여전히 어색하다.
거기에 더해 성격은 상위 1%의 난이도.
처음엔 계몽을 시도했지만, 그건 실수였다.
이젠 요령껏,
작은 틈을 찾아 그들의 생각에 내 마음을 슬며시 밀어넣는다.
생신 파티, 작지만 의미 있게
얼마 전, 장인어른의 생신 파티를 우리 집에서 열었다.
나는 무려 한 달 전부터 기획에 돌입했다.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자.”
메뉴, 동선, 선물, 게임, 이야기 주제까지 정성껏 준비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모임이 끝난 뒤, 가족들로부터
“이번 생신은 뭔가 다르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효사위상, 받은 거나 다름없지.”
좋은 사위는 우연이 아니다
나는 믿는다.
나 같은 사위, 대한민국에 많다고.
다만 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존중받아야 한다.
“묵묵히, 그러나 확실하게 가정을 지탱하는 사위들”,
이제는 그들도 제대로 된 이름을 가져야 한다.
효자와 효부 사이에 묻혀 있던 사위라는 존재,
이제는 ‘좋은 사위’라는 기준을 우리도 고민해야 할 때다.
참견보다 설득, 침묵보다 균형, 피로보다 웃음을 택한 그들의 선택을.
언젠가 정말 ‘효사위상’이라는 상이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그 첫 번째 수상자가 되어도 좋다.
아니, 이미 받은 셈이다.
내가 쌓아온 관계,
내가 버텨온 시간,
내가 조용히 만들어낸 변화들.
그게 바로 내가 받은 진짜 상이다.
그리고 오늘도 난,
다음 가족 모임을 어떻게 더 따뜻하게 만들까 고민한다.
왜냐고?
사위도 진심이면, 가정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