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_9953
"더 열심히 해!" 라는 말의 무게
"너는 노력이 부족해."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에게 부모가 던지는 첫 마디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다. 이미 충분히 힘들었는데, 더 노력하라니. 이 순간, 부모와 아이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 위험한 단순화
‘그릿’ 의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말한다. "열정과 끈기만 있으면 된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성장한다."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모두 '노력 부족'이다. 좋은 대학에 못 간 아이는? 노력이 부족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청년은? 끈기가 부족했다.
정말 그럴까?
실제로 상담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다르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들, 3년째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데 한 발짝도 나아간 것 같지 않은 청소년들. 이 아이들에게 "더 노력하라"는 말은 독이 된다.
부모가 놓치고 있는 것
"우리 때는 말이야, 노력하면 다 됐어."
정말 그럴까. 아니면 그때는 경쟁이 덜했고, 선택지가 단순했을 뿐일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다르다.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이 너무 많다. 사교육 격차, 정보 격차, 경제적 격차.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노력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건, 마치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더 빨리 뛰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 결과는? 아이들의 자존감 파괴와 무력감이다.
김주환의 GRIT: 따뜻한 대안
작가 김주환은 같은 단어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그에게 그릿은 억지로 이를 악무는 '의지'가 아니다. 마음근력이다.
Growth Mindset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
Resilience (회복탄력성)
Intrinsic Motivation (내재적 동기)
Tenacity (지속가능한 끈기)
여기서 핵심은 긍정적 정서다. 용서, 연민, 감사, 수용, 존중. 이런 따뜻한 감정들이 바탕이 되어야 진짜 그릿이 생긴다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묻고 싶은 것
우리는 정말 아이를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의 불안감 때문일까.
아이가 뒤처질까 봐, 경쟁에서 밀릴까 봐, 그래서 계속 "더, 더!"라고 외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생각해보자. 진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만의 속도를 찾았다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자신과 비교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짜 그릿
청소년들아, 들어보자.
어른들이 "노력하라"고 할 때마다 숨이 막힌다면, 그건 당연한 반응이다. 너희는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필요한 건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이다.
나는 어떨 때 가장 집중이 잘 될까?
나만의 학습 리듬은 무엇일까?
실패했을 때 나를 다독여줄 방법은?
작은 성취라도 스스로를 격려할 줄 아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게 진짜 그릿이다.
버티지 말고, 성장하자
결국 차이는 이것이다.
grit: "이를 악물고 버텨라"
GRIT: "따뜻하게 성장해 나가자"
아이들은 로봇이 아니다. 감정이 있고, 한계가 있고, 각자만의 속도가 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채찍질이 아니라 토양 만들기다. 아이가 실패해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 작은 성장도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너는 충분히 괜찮다"는 무조건적 사랑.
그 토양 위에서만 진짜 그릿이 자란다.
노력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