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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무의식에서 살아남는다

에피소드_9927

by 인또삐

오늘 만난 텍스트는 지능의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지만 강렬했다. 기억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우리는 흔히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지식, 즉 이야기와 서사를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를 지탱하는 기억은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 이름을 부르면 즉각 반응하는 것,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는 감각, 피아노 건반 위에서 손끝이 스스로 흘려내는 멜로디,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도 몸이 기억해내는 길 찾기까지. 이것들은 의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무의식이 오랜 경험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온 흔적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무의식의 기억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정체성을 끝까지 붙드는 마지막 끈인지도 모른다. 또 운전을 하다 보면, 집 앞에 다 와서야 문득 깨닫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머리는 그 구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발과 손은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의 힘이다.


치매는 결국 기억을 잃는 병이다.

이름도, 장소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사라진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건 무의식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감각,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는 목소리, 매일 같은 길을 걷는 발걸음. 의식이 만든 스토리는 사라져도, 몸이 익힌 행동은 오래도록 남는다.


그래서 기억을 붙잡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반복하고, 숙달하라. 생각으로만 아는 것은 쉽게 잊히지만, 몸에 새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습관, 매일 걷는 습관, 누군가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는 습관—이것들이야말로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우리 삶을 지탱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억하고, 무한한 속도로 계산하지만, 결코 인간의 무의식을 흉내 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살아낸 경험 속에서 길러진 감각이기 때문이다. 빗속을 걸으며 느낀 차가움, 손때 묻은 피아노 건반의 울림,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을 기억하는 몸의 떨림. 이것은 어떤 알고리즘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기억으로 남길 것인가? 머릿속에 잠깐 스쳐가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몸과 마음이 함께 각인한 무의식의 기억인가?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하나다. 진짜 오래가는 기억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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