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_9911
고등어 1.5마리가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점심 때, 그 짭조름하고 고소한 유혹 앞에서 젓가락을 멈추지 못한 대가는 예상보다 길었다. 저녁 무렵까지 속이 더부룩했고, 마음까지도 무거웠다. 몸은 눕고 싶어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눕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밖은 비가 꽤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바람도, 비도. 하지만 문득, 이런 날 걸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몸이 나에게 요청하는 듯했다. 그래서 우산을 챙겨 문을 나섰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에 빠져들었다.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파동을 만들고, 그 물방울이 톡 튀어 올라 내 종아리를 스쳤다. 순간적인 차가움 속에 이상하게도 따뜻함이 섞여 있었다. 마치 자연이 “여기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바람은 다리를 따라 스치며 지나갔는데, 그 바람결 속에서 어떤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누군가 다정하게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위로였다.
우산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드럼 연주 같았다. 일정한 비트로,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잔잔하게. 그 리듬에 맞춰 내 심장도 박자를 탔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 온몸으로 전해졌다.
평소 같았으면 귀찮고 번거롭게 느꼈을 빗방울이, 오히려 지금은 나를 일깨우는 신호였다. 삶의 의미가 꼭 거창한 것 속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비와 바람이 함께 들려주는 작은 합주 속에서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기적을 기다리느라, 이미 곁에서 매일 연주되고 있는 ‘살아 있음의 음악’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걷는 동안, 속이 편해졌다. 단순히 음식이 소화되어서가 아니라, 나를 소외시켰던 내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 느낌이었다. 내 몸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하루. 그리고 그 몸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밤.
오늘은 내게 사과하고 싶은 날이다. 너무 오랫동안 무시하고, 혹사시키고, 불편함을 외면했던 내 몸에게. 음식은 위장을 채우지만, 걷기는 나를 비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삶의 감각이 스며든다.
과식은 실수였지만, 그 실수 덕분에 나는 다시 걷는다. 그리고 이 걷기가, 나와 내 몸 사이에 조용한 화해를 가능케 한다. 비 오는 밤, 나는 나에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