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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월요일, 선생님이어서 행복했다

에피소드_9891

by 인또삐

오늘 오후,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을 나서려는데

한 1학년 여학생이 다가와 사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허락했고, 그 학생은 친구와 함께 내 연구실을 찾았다.

“교수님, 사주팔자 좀 봐주세요.”
뜻밖의 말에 웃음이 났다.
어떻게 내가 그걸 볼 줄 아느냐 묻자,
“2학년 선배가 알려줬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몇 해 전부터 명리학에 관심을 가져
기본적인 사주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때로는 학생 상담에서 인생의 지도를 그려주기도 했고,
그럴 때면 학생들과의 관계도 한층 가까워졌다.
오늘의 부탁 역시 그런 단순한 호기심일 터였다.

나는 아는 만큼 성심껏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연스레 대화는 이어졌고,
내가 소설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꺼내자
두 학생의 눈빛이 번쩍였다.
서로의 궁금증을 주고받으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했다.


잠시 뒤, 학생들이 돌아가고 나서
그중 한 학생이 카톡으로 과제를 보내왔다.
오전에 낸 영화 감상문 과제였다.

놀라웠다.
첫째, 글은 전혀 챗GPT를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둘째, 내가 왜 그 영화를 추천했는지 정확히 짚고 있었다.
그러나 더 감동적인 건,
영화의 한 장면에서 자기만의 인생 컷을 발견했다는 고백이었다.

“무엇이든 해 봐야겠다.
부딪혀 봐야겠다.”

내가 수업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전해지지 않던 말이
영화 한 편을 통해 훨씬 더 깊이 와닿은 것이다.


오늘, 나는 오랜만에
“선생님이어서 참 좋다”는 마음을 만끽했다.

완벽한 월요일.
지금 내 기분을 굳이 표현하자면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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