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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세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기뻐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또다시 허무감이 찾아왔다.
두 번째 책 때보다는 덜했지만
아드레날린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공허함은 여전히 낯설고 깊었다.
‘이번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출간의 기쁨보다 더 오래 남는 건 늘, 이 묘한 허전함이다.
왜 인간은 성취의 순간마다 허무함을 느낄까.
목표를 향해 달릴 때는 그렇게 뜨거웠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면
그 자리가 텅 비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열망의 불꽃이 꺼진 자리에
의미의 재가 남기 때문일 것이다.
붓다는 이를 일찌감치 알아챘다.
그는 욕망의 끝이 공허로 이어진다는 걸 보았다.
그래서 ‘무(無)’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게 바로 해탈이었다.
오늘 아침,
평소 자주 연락하던 아들에게서 며칠째 전화가 없었다.
그 사소한 일에도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 녀석이 요즘 마음이 멀어진 건가?”
허무감은 참 교묘하다.
기쁨의 틈에도, 사랑의 관계에도 슬그머니 스며든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부족함’이 아니라 ‘깊이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허무감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너는 지금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니?”라고 묻는다.
오늘 읽은 책 '나, 자신 따위는 없다' 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허무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허무감은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정리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붓다가 허무를 이긴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앉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이 감정과 잠시 친구가 되어보려 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과 나란히 앉아,
오늘의 허무를 한 컵의 커피처럼 천천히 마셔본다.
허무감은 실패의 그림자가 아니다.
성취의 반대편에 있는, 또 하나의 진실이다.
그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이렇게 말해본다.
“아, 내가 또 한 번 깊어지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