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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 늪에 빠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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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얼마 전, 주유소에서 우연히 그 차(드림카)를 봤다.
광택이 살아 있었다.
태양빛을 받으며 천천히 들어오는 그 모습이,
거의 광고였다.
운전석에 내리던 주인도
왠지 인생이 잘 풀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순간, 나의 심장이 이상 반응을 보였다.
“이건... 운명이다.”

기름을 넣는 내 손은 떨렸고,
결제 버튼을 누르는 손끝에는
이미 새 차 시승 계약서의 혼(魂)이 깃들어 있었다.

그날 밤, 머릿속에는 그 차밖에 없었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그 차 타면 내 인생도 부드럽게 커브를 돌겠지?’
이런 헛된 상상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 차 앞에 섰다.
햇빛 아래, 내 차의 도색은 약간 바랜 듯했고
타이어는 왠지 더 납작해 보였다.

나는 괜히 중얼거렸다.
“음… 나도 바꿀 때가 됐나?”

그때 깨달았다.
비교는 이렇게, 아주 조용히 시작된다.


사실 내 차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잘 달리고, 브레이크도 부드럽고, 에어컨도 시원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소음이 더 커진 것 같고,
핸들이 묘하게 덜 부드럽게 느껴졌다.

비교는 현실을 왜곡하는 가장 정교한 마법이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 집착한다.
필요해서가 아니다.
비교의 함정 속에서 자신이 작아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결과’를 보고,
그 사람의 ‘과정’을 상상하지 않는다.
비교는 늘 하이라이트만 본다.
그리고 그 짧은 클립 하나로
자신의 삶 전체를 평가절하한다.


인간의 뇌는 원래 ‘비교하는 기관’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고,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생존 전략을 세운다.
문제는 생존의 본능이
이젠 ‘소유의 습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필요한 것을 사는 게 아니라,
비교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소비한다.


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감정이다.”

남의 성공을 볼 때 느끼는 불행,
남의 불행을 볼 때 느끼는 안도.
이 아이러니한 구조가
우리를 끊임없이 ‘비교의 회전문’에 가둔다.


비교를 멈추면, 결핍이 사라진다.
결핍이 사라지면, 감사가 보인다.
감사가 시작되면, 비로소 ‘내 삶의 속도’를 되찾는다.

삶은 경쟁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자라는 정원이다.
남의 화분이 더 커 보여도,
내 화분은 내 계절에 맞춰 피면 그걸로 충분하다.


비교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비교에서 벗어나는 건 인간의 지혜다.

그러니 오늘은 SNS를 잠시 덮고,
내 삶의 무게를 손으로 느껴보자.
비교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첫걸음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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