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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살다가 체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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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몇 달 만에 탁구대회에 나갔다.
연습도 제대로 못 한 상태라 솔직히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 ‘감’을 되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경기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천천히 몸도 풀고, 여유 있게 하자.”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결과는 역시 참사였다.


도착하자마자 라켓을 들고 동료와 몸을 풀었다.
예선이 곧 시작됐다.
잠깐의 공백에 갈증이 나서 준비해온 사과를 ‘순식간’에 삼켰다.
거기에 커피 한 잔, 포카리스웨트까지.
이상한 3단 콤보가 완성되었다.

첫 번째 경기에서 패하고,
두 번째 경기에서 간신히 이겨 본선 진출.
그런데 그때부터 가슴이 쿡쿡 쪼이기 시작했다.

‘혹시 심장인가?’ 싶어 겁이 났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심장이 아니라 위(胃)의 항의 시위였다.


사실 나는 1년에 네 번은 꼭 체한다.
이쯤 되면 거의 계절행사다.
이유는 분명하다 — 급한 성격과 식탐.

매번 다짐한다.
“이제 천천히 먹자.”
그런데 또 당한다.
그 순간은 늘 같다.
허기와 승부욕이 동시에 몰려오면
이성은 그냥 퇴근한다.


이번엔 유독 심했다.
두통에다 가슴 통증까지, 거의 위경련의 풀세트.
‘이게 다 급한 내 성격 탓이지…’ 하며
휴대폰으로 “급체 원인과 대처법”을 검색했다.
검색어 창에는 ‘체한 나를 체하게 하는 나’라는 문장이 떠오를 뻔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산책을 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소소한 실수들이
나를 내 몸에 더 귀 기울이게 만드는 게 아닐까?”

만약 이런 경고조차 없다면
나는 내 몸을 과신하며 함부로 굴렸을 것이다.
결국 이 참사 덕분에,
나는 다시 한 번 ‘천천히 사는 법’을 복습했다.


삶도 식사와 비슷하다.
급하게 삼키면 소화가 안 된다.
감정도, 관계도, 배움도 그렇다.
빨리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결국 우리를 체하게 만든다.

이젠 알겠다.
천천히 먹는다는 건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


오늘 저녁, 나는 다시 다짐했다.
사과는 꼭 씹어서 삼키자.
커피는 천천히 마시자.
그리고 인생도—서브가 아니라 랠리처럼,
조금 느리게 오래 즐기자.


급한 성격이 부른 참사 덕분에
오늘 나는 조금 덜 급한 인간이 되었다.
어쩌면 그게 이번 경기의 진짜 승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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