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레시, 몸이 먼저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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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어제 저녁, 몸이 나보다 먼저 퇴근해버렸다.
의지는 야근 중이었는데, 몸은 칼같이 전원을 꺼버린 것이다.

주말부터 어제까지 꽤 성실하게 살았다.
가족 일정 챙기고, 긴 회의 버티고,
“이 정도 운동은 약이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탁구까지 쳤다.


문제는 몸이 그 말을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녁을 먹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초저녁에 잠들어 새벽에 잠깐 깼는데,
그 시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 내가 관리한 건 일정이지 몸이 아니었구나.

새벽의 어둠 속에서 하루를 다시 정리했다.
컴컴한 시간에 출근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지난 일주일을 되감아보니,
삶이란 게 늘 이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조금만 더”를 외치며 버티지만,
몸은 “여기까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몸은 참 정직하다.
칭찬도 과장도 없다.
무리하면 아프고, 쉬면 돌아온다.
말이 없을 뿐, 늘 정확한 보고서를 제출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 보고서를 읽지 않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한 번 제대로 무너지고 나니
오늘 아침은 괜히 기분이 좋다.
뭔가 대단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과 다시 같은 편이 된 느낌 때문이다.


리프레시는 거창하지 않았다.
결심도 계획도 필요 없었다.
그저 멈추고, 눕고,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래, 너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것.


몸은 늘 우리 편이다.
우리가 너무 앞서 달릴 때
가장 먼저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조용하지만 가장 철학적인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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