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도록 설계된 감정이다
부모님 세대 얘기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고백.
특히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다.
말이 없었고, 표현이 없었고,
관계는 책임으로만 유지됐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자식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모른다.
자식과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책임’과 ‘기대’로 시작하고 끝난다.
자식은 당연히 늙은 부모를 돌보는 존재,
이것이 그들의 기본값이다.
내가 자라온 세대는 대부분 3남매, 4남매였다.
형제 중 적어도 한 명은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
특히 장남과 어머니 사이.
고부 갈등의 연장선에서 생긴 균열.
‘다 그렇지는 않겠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경험상 대개 그렇다.
나는 오래전부터
사랑은 ‘내리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해왔다.
자연의 순리처럼,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한다.
거꾸로 올라가는 사랑은
너무 힘들고, 너무 지친다.
하지만 그 말이
부모님 세대에게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효도’라는 단어가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을
고착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세대는
사랑을 연인에게, 혹은 내 아이에게 집중한다.
부모는 그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할 여유도, 시간도,
마음의 여백도 없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 좁은 범위에서만 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 방식의 거꾸로 사랑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건 부모님을 직접 위하는 게 아니다.
부모와 손주 사이의 연결을 도와주는 일.
부모님은 자식에게 서운함이 많다.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손주와 함께 있는 순간엔
그 서운함이 잊힌다.
사랑이 다시 흘러가기 때문이다.
한 세대를 건너뛴 이 사랑은
오히려 더 깊고 자연스럽다.
서로에게 부담이 덜하고,
감정의 표현도 훨씬 부드럽다.
나는 그 연결을 돕는 조력자가 되기로 했다.
부모에게 다시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새로운 대상’을 만들어주는 일.
어쩌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효도다.
사랑에는 실패가 없다.
그저 길이 잘못 나 있었을 뿐.
우리는 그 흐름을 다시 잇기만 하면 된다.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모두 조금은
따뜻한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