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은 ‘긍정의 아이콘’이다.
가족 사이에서도, 일하는 현장에서도 그렇다.
“하지 마.”
“그건 안 돼.”
“무모해.”
이런 말들,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살아왔다. 어릴 적부터 그런 말에 둘러싸여 지내왔고, 실제로 그 말들을 따라 살다가 잃은 기회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다 해보자고 말한다. 시작은 일단 하고, 어긋나면 그때 가서 방향을 바꾸면 된다. 그렇게 살다 보니, 예상과 달리 괜찮은 일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오늘, 한 권의 책에서 나보다 훨씬 강력한 긍정의 인간을 만났다.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삶이 있다’고 믿는다.
생각해보면, 이것만큼 궁극적인 낙관이 또 있을까?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신의 존재도 확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긍정은 언제나 현실의 테두리 안에 있다. 꽤 긍정적인 성향이라 자부하지만, 종교적 낙관주의 앞에서는 어쩌면 한참 아래일지도 모른다.
그럼 질문이 생긴다.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으니, 절대적인 긍정은 불가능한 걸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종교가 말하는 믿음이란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긍정은, 오늘을 믿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충분히 좋을 수 있다는 가능성.
오늘의 선택이 나를 더 나은 쪽으로 이끌 수 있다는 감각.
사후 세계가 아니라 ‘다음 하루’를 믿는 마음.
그 정도 긍정이면, 꽤 괜찮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도 나는 믿는다.
일단 해보면, 그 안에 길이 있다는 걸.
망하지 않더라는 걸.
그리고 가끔은, 생각보다 더 멋진 결말이 찾아오는 때도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