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한 학자가 인간의 삶의 태도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흥미롭게도 이 분류는 단지 성격이나 성향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애 전체—특히 수명과 노화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첫 번째는 도박꾼이다. 그는 인생을 거칠게 몰아붙인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몸은 자산이 아니라 소모품이다. 이들은 생의 순간순간을 강렬하게 불태우지만, 그 대가로 가장 먼저 무너진다. 자기 삶의 핸들을 스스로 놓아버린 존재, 어쩌면 가장 짧고도 불안정한 생애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두 번째는 정비공이다. 그는 기계처럼 몸을 다룬다. 이상이 생기면 병원을 찾고, 약을 먹고, 수치를 조정한다. 첨단 의료기술을 맹신하며, 자신의 삶을 외부의 도구로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다. 정비공은 '왜' 아픈지를 묻지 않는다. 고장난 원인을 파악하려 하기보다, 증상만 제거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늘 땜질의 삶을 산다. 변화는 없고, 반복만 있다.
마지막은 정원사다. 그는 삶을 가꾸는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알고, 뿌리의 상태를 먼저 점검하며, 물과 햇볕의 균형을 조율한다. 정원사는 미리 대비하고, 작은 이상에도 귀를 기울인다. 자신의 습관과 감정을 성찰하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인내한다. 그는 생을 '경작'한다.
고전에서 말하길, "삶은 기계가 아니라 밭이다". 우리가 정비공이나 도박꾼처럼 살 때, 생은 늘 예측 불가능하고 위태롭다. 하지만 정원사처럼 살 때, 생은 비로소 리듬을 갖고, 순환을 시작한다. 그 순환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노화를 받아들이고, 삶을 완성해간다.
지금 나는 자문한다.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나의 삶을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내 생의 마지막 계절을 어떤 손길로 맞이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