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장인장모님께 핸드드립 커피를 소개해드렸다. 처음엔 생소해하시던 두 분이 이젠 드립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 못할 정도다. 같은 브랜드, 같은 원두만 고집하시던 분들이었는데, 얼마 전엔 조금 더 고급스러운 원두를 보내드렸다. 그런데 사람 입맛이란 참 묘한 거다. 더 비싼 원두인데도, 두 분은 익숙했던 맛을 그리워하셨다. 그래서 요즘은 드립 방법도 달리 해보고, 커피와 곁들이던 견과류나 과자는 잠시 멀리하면서 본연의 맛을 찾기 위해 애쓰신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커피 한 잔에도 정성을 다하는 이 태도야말로 그분들의 인생 철학이 아닐까. 쉽게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낯설지만 좋은 것을 알아가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 정신. 어쩌면 우리 시대가 잊고 지낸 태도가 거기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처음엔 커피맛을 잘 몰랐다. 스타벅스의 모카, 라떼와 분위기에 취해 커피를 즐긴다고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커피는 브랜드였고,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소품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커피 동호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커피는 단지 '음료'가 아닌, '관계'와 '대화'의 매개체가 되었다.
요즘 나는 커피를 마신다고 하지 않는다. 커피와 함께 시간을 나눈다고 말한다. 그 시간이 꼭 누군가와 함께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책과, 때로는 고요한 새벽과, 때로는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 풍경과 함께한다. 아침을 깨우고, 생각을 다듬고, 오후의 재충전을 책임지는 고마운 친구.
커피가 내 삶에 들어온 건, 우연 같지만 필연이었다. 커피를 통해 배운 건, 맛보다는 태도다. 무엇을 마시느냐보다, 어떻게 마시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보다,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가느냐가 결국 우리를 만든다. 그렇게 본다면, 내 인생에서 커피를 만난 건 참 다행이다. 아니, 참 커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