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해상도'를 읽고

내 일상을 4K로 기억한다는 것

by 쥬드

나는 회사 책상에 모니터를 세 대나 올려두고 쓴다.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주식 트레이더예요?”, “개발자이신가 봐요?”라고 묻곤 하지만, 사실 내가 하는 일은 지극히 평범한 문서 작성과 엑셀 작업뿐이다. 그저 IT 기기를 유난히 좋아해서 사비로 하나씩 모니터를 사 모으다 보니, 어느 순간 책상 위가 ‘멀티 모니터 방’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화면은 클수록 좋겠지”라고 생각했다. 화면이 크면 더 시원하고 잘 보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여러 대를 써 보니 크기보다 더 중요한 건 ‘해상도’라는 걸 알게 됐다. 같은 27인치 모니터라도 FHD(1920×1080)와 4K(3840×2160)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픽셀 수가 다르니 한 화면에 담기는 정보의 양도, 글자의 또렷함도, 색감의 깊이도 달랐다. 그래서 이제는 오히려 작지만 해상도가 높은 모니터가, 크지만 해상도가 낮은 모니터보다 더 비싸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의 해상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오래 산다고 해서 인생의 해상도가 자동으로 높아지는 건 아닐 것이다. 반대로 짧은 시간이라도 얼마나 밀도 있게 바라보고, 얼마나 또렷하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삶의 해상도는 크게 달라진다. '인생의 해상도'책에서 작가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아주 사소한 장면들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곱씹는다. 출근길에 스치는 풍경, 잠깐의 휴식 시간,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은 순간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자기 삶의 해상도를 한 칸, 한 칸 올려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디지털 사진도 여러 번 압축하고 전송하면 화질이 깨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풍화되어 버린다. 우리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그때는 선명했던 감정과 장면들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흐릿해지고, 결국 “그때 좋았지” 정도의 저해상도 썸네일만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마치 과도하게 압축된 이미지처럼 저용량 파일로 축소되어 버리는 셈이다.


책에서는 이런 ‘인생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방법을 제시한다. 메모를 하거나, 특정 감각을 일부러 차단해 다른 감각을 예민하게 느껴 보거나, 익숙한 동네를 낯선 여행자처럼 산책해 보는 것들이다. 겉보기엔 단순한 생활 습관 같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핵심은 하나로 모인다. 얼마나 호기심을 가지고,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자기 삶을 바라보느냐가 인생의 해상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설정값’이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올해의 나는,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꽤나 ‘낮은 해상도’로 살아온 것 같다.


날짜는 흘러가는데 마음속에 남는 장면은 희미하고,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복사·붙여넣기 된 것처럼 느껴졌다. 의미와 의욕이 빠져나간 채 그냥 “또 하루 버텼다”는 감상만 남는 날이 많았다. 마치 최고급 고해상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정작 내 눈은 흐릿한 해상도로만 세상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졌다.


내 인생의 해상도는 ‘자동 조정’이 아니라, 내가 직접 올려야 하는 설정값이라는 사실이다. 회사 책상 위 모니터 해상도 설정을 바꾸듯이, 나 역시 내 삶의 감도와 해상도를 올리기 위해 작은 노력을 시작해야겠다고 느꼈다. 지나가는 순간을 그냥 ‘배경화면’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메모 한 줄이라도 남기고, 오늘 하루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장면 하나쯤은 붙잡아 두는 것. 그게 어쩌면 인생의 4K 해상도를 향해 한 픽셀씩 채워 넣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년의 목표를 세워본다.


“대단한 일을 하겠다”가 아니라, “내 일상을 4K로 기억하겠다.”


삶을 대충 ‘전체 화면’으로 틀어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대신, 좀 더 선명하게,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나만의 인생 해상도를 한 칸씩 올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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