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ㅡ마음 노트를 덮으며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받길 바랐다.
누군가의 긴 한숨, 참아온 눈물, 버티며 살아낸 하루가 “괜찮아지는 중입니다”라는 말로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면서.
1편의 ‘유치원 가기 싫어요’는,
처음 세상과 마주하는 아이의 두려움을 어루만지며 시작됐다. 그 두려움은 어쩌면 모든 인간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아직 마음은 엄마 품 안에 머물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2편부터 6편까지는, 부모로서의 우리의 불안과 후회를 다뤘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 앞에서
모든 부모는 여전히 미숙한 어린 아이다. 하지만 아이의 눈을 마주 보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상담실에 온 부모들은 늘 말했다.
“아이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게 먼저네요.”
7편과 11편에서는 재혼과 새로운 가족을 다뤘다.
서로의 상처가 부딪히고, 다름이 다시 아픔을 낳을 때 그 속에서도 ‘함께 성장하는 가족’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용기를 가졌다. 그 용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8편 ‘나는 왜 늘 불안할까요?’에서
우리는 불안이 사라져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감정이며 삶을 지탱하는 '경계 신호등' 이라는 걸 나눴다.
그리고 9편, ‘대화가 막혀버린 부부’의 이야기에서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들어줄 귀’ 즉 상대의 마음에 머물러 줄 시간임을 깨닫는 이야기다.
10편의 ‘이혼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까요?’는
많은 이들의 공감과 눈물이 모인글이었다.
이별은 실패가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시작이라는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진실을 담았다.
12편과 13편은,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나’를 되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나는 누구일까요?”라는 물음은 결국 “나는 아직도 성장 중인 존재”라는 진실이다.
그리고 마침내 14편 ‘내 마음 사용 설명서’에서,
게슈탈트 상담이 말하는 ‘지금 여기’의 나를 만나는 법을 나눴다.
그 모든 여정을 지나, 15편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그리고...’에서는 지금까지 완성보다 과정의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정리했다. 누구나 상처를 품고 있지만,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용기, 그것이 바로 ‘괜찮아지는 중’이라는 삶의 이름이다.
• 나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 회복은 빠르지 않아도 된다.
• 느리게라도, 나는 자라고 있다.
• 그리고 오늘도, 괜찮아지는 중이다.
이 연재를 마치며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수현아, 너도 괜찮아지는 중이야.”
상담실에서 마주한 수많은 얼굴들, 그들의 삶 속에서 나 역시 치유받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고백한다.
이 글들은 단지 누군가를 돕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했다.
심리상담가로서, 시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흔들리고, 괜찮아지는 중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용히 건네고 싶다.
“당신도 괜찮아지는 중이에요.”
지금의 혼란과 고독, 그리고 작지만 분명한 희망까지, 그 모든 것이 당신의 회복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