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명과 삶의 무게를 오감을 통해
오성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으며,
지금 현재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존재의 근본적인 자각에 대한 이야기 이다.
우리는 나와 타자로 이루어진 세상과 주변을 가득채우고 있는
사물의 물자체로서의 존재를 오롯이 느껴가면서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손을 보자.
작고 스마트함이라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작은 액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스마트폰이다.
AI와 세상의모든 정보를 찾아낼 수 있기라도 하는 듯
당당하게 탑재된 검색기능, 무한확장의 가능성을 가진
SNS와 소통의 플랫폼까지 가히 우리의 운명의 반려자라
칭하여도 과하지 않을 정도인 것 같다.
필요한 정보든 불필요한 정보든 손가락만 있으면
모두 해결이 되는 그야말로 정보로 이루어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함정이다.
과연 손가락 촉감과 두 눈을 가지고
정보로 이루어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손가락의 움직임은 알고리즘의 형태로 변환되어
우리에게 마치 지배당하고 있는 것처럼 온갖정보를 우리에게 갖다 바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정보가 반대로 우리에게 주입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차별적인 유사정보와 선호정보를 선별하여
우리의 엄지손가락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그렇게 유도된 정보에 따라 선호도가 다시 결정되고
그것이 곧 수요로 이어져 경제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익명성과 대체성을 무기로 각종 어플리케이션과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지만 결국은 선호되는 가치의 정보는
그대로 데이터가 되고 곧 수요로 연결되게 되니
익명성이라는 이름은 더이상 의미가 있는 가치는 아닌 것 같다.
디지털 미디어들이 시간공간적 저항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저항의 부정성이야 말로 경험을 위해 필수적이다.
SNS 또한 누군가의 관심을 기다리며
초조한 좋아요를 기다리고,
채팅창의 말풍선 옆의 숫자가 없어지지 않음에 초조해하며
항상 대기중인 엄지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에게 명령해보라! 그만해!
나의 의지로 나는 그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연결된 익명의 타자에 의한 관계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계속되게 된다.
네트워크 안의 나의 존재는 더이상 사라질 수 없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및 인용
(1) 한병철 <사물의 소멸 中 >"스마트폰"(김영사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