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상으로서의 세계와 색즉시공 공즉시색

쇼펜하우어 할아버지와 석가모니 삼촌의 콜라보

by 글씨가안엉망

수백권의 반야경 경전의 내용을

단260자의 불경으로 만들어낸

불교 최고의 경구라 일컬어지는 반야심경

그 반야심경의 경구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어지는 구절이 있다

바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과 공은 다르지 아니하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이라는 말로서

삼라만상에 대한 존재의 인식과 감각의 실체가 없으므로

그 안에서의 고통과 즐거움 또한 모두 공한 것임을 이야기하는

8글자의 경구이다


이 경구를 보면 생각나는 분이 한 분 계시다. 바로 쇼펜하우어 할아버지. ^^

염세주의 철학자라 일컬어 지지만 염세주의의 단계를 넘어선

표상된 세계만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이며

그 본질은 의지로서 의지의 부정으로 우리는

고통도 두려움도 행복도 없는 부존재로서의

최고의 가치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하신 분이다.


어떠한가?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의지의 부정의 결과인

부존재의 경지가 다른 경지인가?

불현 듯 생각이 들어 잊어버릴 까봐 이렇게 단상에 써 놓았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과 부존재는 표상의 실체를 인정하며

고통과 두려움만이 아닌 이루어지는 행복에 대한

권태와 또다른 결핍에 대한 존재까지

사라지는 최고의 가치(최고의 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악을 정의할 수 없으므로)를 의미하는 말로 이해 할 수 있다.

반면에 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비교해보면

결이 다른 개념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두분이 콜라보를 이루면 동서양의 부존재와 공을 일목요연하게

비교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공과 부존재를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는 없다.

공은 엄연히 존재의 방식에 대한 불인정이며

부존재란 애초의 무의 개념으로의 귀결로 약간의 다른 결은 가지고 있으나

재미있는 비교와 질문인 것 같다.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의지의 부정에 따른 부존재의 개념은 같은 개념인가?

아니면 존재의 가정에서부터 다른 결을 가진 반대의 개념인가?

솔직히 잘 몰라서 질문으로 남겨본다.

또 다른 욕심을 부려본다면 니체아저씨의 의지의 무한긍정의 개념 또한

한계를 무너뜨리는 의지의 개념으로

세분이 토론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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