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는 다시 5mm 문틈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있었고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잔 것 같다. 수면제도 없이 안정제도 없이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가장 안전한 장소이자 공간이었던 그 문틈 뒤에 5mm의 틈새 뒤에 조용히 입을 다문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옆에 있던 동생도 울고 있던 엄마도 그대로였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몽중몽 더러운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주변에는 엄마도 동생도 그리고 무서운 아빠도 없었다. 나지막히 주문
처럼 외는 엄마의 한마디만 들려왔다. 너희 때문에 산다. 너희만 없었다면....
기대 여기서부터다. 나에게 불행과 절망을 가져오고 실망하고 때론 포기하며 눈물짓고, 기대에 대한 감정은 어찌되었든 결과에서만 발생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인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습관적 포기중독이었다.
기대는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가정이 평화로워지기 위한 최소한의 기대
조차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기대 없이 포기하는 편이 나를 겨우
버티게 해준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를 향한 스스로의 비난 그것 뿐이
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가정불화와 폭력의 이유가 나였을 것이라 믿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나를 비난 해야했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없기에 나는......
가끔은 새로운 환경이 되면 나도 모르게 기대라는 것을 하게 된다. 뻔히 실망 할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여지없이 실망하지만. 그래서 항상 기대와 실망의 관계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상상하고 생각하고 피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런
상황에 나의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해왔고 지금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가족이 실망하지 않게 하기 위한 불면의 밤,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 결국 얻은 것은 갑작스런 어지럼증, 공황발작, 그리고 PTSD라는 진단명이 지금의 나를 나타내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날 나에 대한 기대의 상상 그 끝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은 주변의 모든 상황을 빨아들이고 결국은 파국으로 파고드는
소용돌이처럼 나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지만, 결국 매일매일이 반복이었고 다
자라버린 지금도 여전히 다른 일상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결국 깨달은 것은 불안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절망과 포기였다. 그리고 희망이란
항생제는 절대 금물이다. 가끔 비집고 들어오는 희망의 씨앗까지 다 뽑아버리며
더 이상 변화가 없는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나를 살게해
준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렸을 적의 나의 삶은 별다르지 않은 줄 알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렇게 해도 괜찮은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살아오고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대를 억누르기 위해 포기와 절망을 선택하는 순간 살아가기 위한 존재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존재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더욱 비참한 것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과 주변의 것들까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른다. 절망과 포기는 더 이상의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해주고 다른 대상으로 나의 관심을 돌려주는 유일한 치료제이자 도피처였으니 언제든지 도망가고 숨어 있을 수 있었다. 5mm 문틈 뒤 처럼.
도망가고 숨어야 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찾아내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불안은 필요할 때마다 과거에서 슬며시 다가와 나를 잡아끌고 여기저기 불안의 소용돌이를 만들고 나락으로 빠뜨린 후 도망가고 숨어다닌다. 잡을 수 있는 힘도 생각도 없어진지
오래다. 나를 구하기보다 피하고, 결국은 포기를 향해가는 나를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