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개학

by 움이누나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 법칙이 있다.

시간의 법칙에 따라 개학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시각은 11:02 pm.

역시나 잠이 오지 않는다.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선 밤, 약간의 긴장이 더해진 밤.


내가 학생 때에도 개학이 이렇게나 긴장이 되었을까?

교사가 된 지 어언 5년이 되었지만 역시나 나는 개학 앞에서는 애송이가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선배교사들 역시 개학 전 날에 잠을 설친다는 것을 어느 개학 날 함께 급식을 먹으며 알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만 애송이가 아니라서.


아, 생각을 하나씩 없애보자. 얼른 잠에 들어야지!


새벽 7시, 알람소리에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기초화장을 하고, 옷을 챙겨 입는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어 어젯밤에 주문해, 오늘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컬리의 식재료를 하나씩 뜯어 냉장고에 채워 넣는다.


아, 진짜 개학을 하는구나! 또 (혼자) 먹고살아야지!


오전 8시 20분 전체 교직원 회의에 참석한다.

학교 공사로 여름방학이 꽤 길었지만, 회의에 참석한 선생님들은 마치 어제도 본 것 같다.

나처럼 다들 긴장되어서 잠을 주무시지 못했겠지?

2학기에 전근오신 선생님, 복직하신 선생님들은 더더욱 긴장되셨겠다. 하며 잠깐 오지랖을 부려본다.


아침 9시, 우리 반에 들어가 아침 조회를 한다.

역시나 오랫동안 못 본 아이들이지만, 마치 어제 본 것만 같다. 다들 잘 놀다 왔는지 새까맣게 태웠다.


어머! 지원아!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반토막이 되었는걸???????



... 부럽다


오늘 급식은 김치제육. 정말 딱 개학날에 어울리는 식단이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하나도 새롭지도 않은 김치제육.


그렇게 정신없게 수업을 하고, 업무에 끌려다니며 오전, 오후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후 4시 40분. 퇴근시간의 10분이나 더 일했다.

말도 안 돼! 얼른 퇴근해야지.


오후 5시 15분. 오후시간이라고 하기에는 좀 늦고, 저녁시간이라고 하기엔 좀 빠른 애매한 시간, 나는 항상 애매한 시간에 집에 도착한다.


집에 도착한 후 곧바로 저녁 준비를 한다.

대학생 생활까지 합쳐서 부모님과 떨어진 기간이 대략 9년이 넘어가지만, 기숙사 생활(학식 포함)을 제외하고 직접 밥을 해 먹었던 기간은 대략 7년.


첫 내 집이 생기고(남의 집이지만 혼자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곧 내 집이 아닐까?)

대학교 때는 본가에서 반찬도 많이 보내주셨었다.


지금은 어림도 없다.

무조건 내가 해 먹거나 사 먹어야 한다.

반찬이 남아 버리기 일쑤였던 대학생활을 반성하며 하루 한 끼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귀찮고 고된지, 내가 스스로 직장을 잡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하루에 진이 빠지도록 수업하고, 상담하고, 업무 하고, 생기부를 쓰다 집으로 들어오면 밥은커녕 젓가락 들 힘도 없었다.


그래도 신축건물의 이쁜 주방을 한껏 활용해 보고자, 인스타에 올릴 바람직한 자취생의 식단을 올리기 위해

교사가 된 후 1년 간은 정말 열심히 해 먹었다.



가지탕수육, 돼지등심스테이크, 삼겹 볶음 가락국수, 각종 찌개들, 각종 덮밥류.. 등등


지금은 인스타에 자랑할 마음도, 이쁘지도 않은 주방을가진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요리를 하는 것보다 침대에 누워 퍼질러지게 유튜브를 시청하는 게 도파민을 채우기엔 더 가성비가 좋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밥을 한다.

아주 간단하고도 복잡하게


예를 들면

나는 이제 꼭 쌀을 소량으로 구입해 직접 쌀을 정성껏 씻어 밥솥에 밥을 안친다.


고슬고슬 밥이 완성될 동안 빠르게 컬리에서 시킨 세상 유명 맛집들의 음식을 데우거나 조리한다.


오늘은 야채비빔밥이다.

각종 야채들이 담겨 온 키트의 포장지를 뜯어 큰 대접에 정성껏 담는다.


아 국물이 필요한데, 국이 없네?

그렇다면 달걀국을 끓여야지.


냉장고를 열어 육수코인을 꺼내 끓는 물에 투하한다.

코인이 서서히 녹으면 냉동실에 냉동해 둔 손질해진 대파를 투하한다.


그리고 좀 끓이다 계란 2개 푼 물을 살포시 뿌려본다.

계란이 흐물흐물 액체에서 고체로 바뀌는 동안, 냉장고를 열어 반찬들을 꺼낸다.

갓김치, 어귀포무침 등 그때그때 먹고 싶은 반찬들을 작은 접시에 하나씩 담는다.


그러다 생각한다. 단백질이 부족한데?

다시 냉동실 문을 연다. 얼린 닭가슴살이 남아있다!

그것도 매콤 양념치킨 맛으로!


얼른 포장지를 뜯어 전자레인지에 2분 30초 해동시킨다. 얼린 닭가슴살은 마치 내가 다이어터가 된 기분이라 기분이 좋고, 맛도 좋은 편이라 한 끼 식사의 훌륭한 반찬이 되어준다. (단점은 포장지 뜯는 게 너무 힘들다)


계란국이 흘러넘치는 소리가 난다. 살짝 찬 물을 추가해 물을 가라앉게(?)한 다음 싱크대 옆 아래 서랍에서 소금, 후추, 국간장, 멸치액젓을 꺼낸다.


소금을 츅츅 뿌리고, 그 위에 후추 톨톨톨 돌려주고 간을 본다.


오? 벌써 맛있는데!

그럼 거기서 만족해야 하는데 꺼내놓은 국간장, 멸치액젓에게 눈길이 간다. 국간장 반스푼, 멸치액젓은 반의 반스푼을 첨가해 본다.


그 사이 밥솥이 큐류류류륭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제 밥이 완성되기까지 5분.


동시에 전자레인지에서 삐비빅삐비빅~ 해동이 다 되었다고 소리친다.


그래그래 알겠어~ 금방 꺼내줄게!


갓김치와 반찬을 담은 그릇에 닭가슴살을 올려 한 입 크기로 썰어 담는다.


곧 밥이 완성되었다고 밥솥이 알려준다.

얼른 주걱을 꺼내 밥솥을 열어 밥을 휘젓는다.

고슬고슬 흰쌀밥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긴다.

아~ 좋다! 밥 냄새!


주걱에 붙은 밥을 떼어먹으며 비빔밥 재료가 있는 대접에 밥을 옮겨 담는다.


밥을 조금 담으면 나물이 많아 보이고, 그래서 밥을 추가하면 죄책감이 들어 또 한 숟갈 덜어낸다. 한 숟갈 덜어낸 대접의 밥을 보면 또 나물이 많아 보인다.


..

덜어낸 한 숟갈을 도로 대접에 담는다.

욕심쟁이와 짠순이가 동시에 들어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 참 웃겨 혼자서 피식 웃는다.


잘 담아낸 비빔밥 대접과 각종 반찬들이 담긴 그릇을 밥상에 올려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어 낸(그렇다기엔 육수 코인을 썼지만) 대망의 계란국을 국자로 퍼 국그릇에 옮겨 담는다.


저녁 6시, 오늘의 저녁상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배가 고파 얼른 밥부터 입에 넣고 싶지만, 아직 밥 먹을 때 볼 영상을 정하지 못했다. 1~2분가량 최고의 밥상처럼 최고의 도파민을 선사해 줄 유튜브 영상을 찾는다.


그렇게 정한 영상을 틀어두고 그제야 비빔밥의 재료와 흰쌀밥을 마구 비비기 시작한다.


그리고 입에 넣은 첫 숟가락!!


아. 꿀맛이다.


거창하지 않지만 갓 지은 쌀밥에 각종 야채, 뜨끗한 계란국, 소소하게 재미를 주는 반찬들, 거기다 매콤한 양념치킨 맛 닭가슴살까지!


20분 가량 맛있게 식사를 끝내고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 최고의 휴식을 즐긴다.


오늘 저녁 한 끼도 잘~ 먹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습니다!

이번 학기도 잘~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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